나는 하루 종일 원고와 씨름 하다 문득 울리는 핸드폰을 열었다.
아버지였다. 귀찮은 마음이 들었다.
첫 번째 소설을 마무리하는 중이었다. 분위기가 끊어지는 게 싫었다.
어쩔 수 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왜요? 아빠? 진아, 오늘 엄마 9번째 기일인 거 알고 있지?
잊고 있었다. 세월 탓을 했다.
네..그럼요..
집에 일찍 오거라.
네. 그때 봐요. 아빠.
마음 한 켠이 뒤죽박죽 내려 앉고 있었다.
쓰고 있던 소설의 맨 마지막 장이, 순간 펜을 멈추게 만들었다.
아.., 왜, 지금 이 순간에..,
그때, 우리집 고양이 미미가 내 손등 위로 올라 앉았다.
잡고 있던 커피가 내 허벅지로 쏟아졌다.
미미! 이게 무슨 짓이야!’괜히 고양이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햇살이 내리 쬐고 있는 바지를 보았다.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
물끄러미 쳐다보다 문득 한 기억이 떠올랐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입던 바지이다.
병환으로 옷 입는 거마저 입기 힘들어했던, 매일 같은 옷만 입고 있었던, 그 바지이다.
순간 나의 냉혹함과 무관심을 비난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서둘러 옷을 갈아 입고 집을 나섰다. 아버지에게로.
엄마가 돌아가신 지 3년이 흘렀다.
난, 어느새 글을 쓰기 시작했고, 아버지와 내 동생은 슬픔을 거짓으로 가두고
일상을 버티고 있었다.
아니, 그랬던 거 같다. 70대 중반으로 접어 들은 아버지는 현역에서 은퇴했고,
집에서 무기력함을 한껏 내보이며 도와 달라고 소리치는 거 같았다.
그렇게 한 몸이었던 피아노는 몇 년 째 작은 방에 방치되었다.
물어보지는 않았다. 왜 피아노를 안치시는지..
아버지의 슬픈 미소를 뒤로 하고 홀로 피아노 방에 들어갔다.
너무도 오랜만이다. 엄마가 가시고 이 방에 들어 온 적이 없었다.
트라우마가 나를 덮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깨끗하게 닦여져 있는 피아노를 바라 보았다.
엄마와의 젊은 시절 사진, 아버지와의 연애 시절의 모습이다.
환하게 웃고 있는 흰백의 엄마.. 두려운거겠지?..
이제 이것을 보고도 웃을 수 없으니, 난 애써 입술을 꽉 조이며 그 방을 나섰다.
김별 | 글 쓰는 연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