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서 첫 女하원의장까지…美정치 새역사 쓰고 떠나는 펠로시

  • 등록 2025.11.07 16:59:55
크게보기

美민주당 막후 실력자…오바마케어·日위안부 결의안 통과 주도
트럼프와는 '앙숙'…연설문 찢고 1기때 탄핵소추안 가결도

 
(서울=연합뉴스) 6일(현지시간) 사실상 미국 정계 은퇴를 선언한 민주당 낸시 펠로시(85) 하원의원은 미국 역사상 처음이자 유일하게 여성 하원의장을 지낸 살아 있는 역사다.
 
펠로시 의원은 이날 본인 선거구인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유권자들에게 보내는 영상 연설에서 내년 11월 하원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1987년부터 19선을 지낸 펠로시 의원이 내년 1월 임기 종료와 함께 은퇴하면 39년에 걸친 정치 여정을 마무리한다.
 
펠로시 의원은 가정주부로 살다가 47세에 뒤늦게 정계에 입문해 하원의장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특히 전통적으로 남성의 주 무대였던 미국 정치권에서 여성의 유리천장을 깼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1940년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태어나 볼티모어 시장과 민주당 하원 의원을 지낸 부친을 보며 자랐다.
 
식탁에서 자연스럽게 정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그는 트리니티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면서 정치에 대한 관심을 본격적으로 키웠다.
 
펠로시 의원은 20∼30대 시절엔 동시대 여성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았다.
 
조지타운대에서 계절학기를 듣는 동안 남편 폴 펠로시를 만나 결혼해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했다. 그리고 다섯 자녀를 돌보는 전업주부가 되었다.
 
그 와중에도 정치에 관심을 놓지 않고 집에서 민주당 정치자금 모금 행사를 열며 지역 정계 인사들과 네트워크를 쌓았다.
 
그러면서 1979년 캘리포니아 대표 민주당 전국위원(DNC)으로 선출됐고, 1981년에는 여성 최초로 캘리포니아 민주당 대표를 맡았다.
 
이어 1987년 샌프란시스코를 포함하는 캘리포니아 11선거구 보궐선거에 출마, 연방 하원의원으로 처음 당선되며 본격적으로 전국구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이후 빠르게 당내 지도부로 성장, 2002년 미국 주요 정당에서 처음으로 하원 원내대표에 당선돼 민주당을 이끌었다.
 
민주당이 2006년 하원에서 다수당을 탈환하자 2007년 1월 그는 미국 최초 여성 하원의장으로 선출되며 새로운 역사를 썼다.
 
그는 의장석 연단에 의원들의 자녀와 손주들을 불러 함께 선서하면서 미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며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민주당이 다수당 지위를 잃어 2011년 1월 하원 의장직을 내려놓았지만, 2019년 다시 민주당이 다수당이 되면서 하원의장으로 복귀해 2023년까지 재직했다.
 
펠로시 의원은 총 8년간 하원의장을 지내면서 공공의료보험 오바마케어(ACA)를 비롯해 여러 기후 관련 법안, 2007∼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의 경기 부양책 등 굵직한 법안 통과를 이끌었다.
 
특히 2007년 7월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촉구하는 결의안 통과를 주도, 한국에도 의미 있는 역할을 한 미국 정치인이다.
 
그는 이 결의안이 본회의에 상정되기에 앞서 낸 성명에서 "결의안을 통과시켜 우리가 위안부들이 겪은 엄청난 고통을 잊지 않을 것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해주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펠로시 의원은 중국에 대해서는 인권 탄압을 이유로 강경 기조를 이어왔다. 
 
1991년 베이징을 방문, 톈안먼 사태 희생자를 추모했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 유치도 반대했다. 2022년 8월엔 미 의회 대표단을 이끌고 대만을 전격 방문해 미국과 대만 간 연대를 과시했다. 당시 중국은 무력시위 수위를 끌어올리며 보복에 나섰고, 미·중 관계는 급속히 악화했다. 
 
펠로시 의원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권 1기 때는 내란 선동 등의 혐의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두 번이나 가결했다.
 
펠로시 의원은 탄핵안 가결뿐 아니라 꾸준히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과 언행에 대해 보인 거침없고 비판적인 태도로도 유명하다.


그의 거침없는 태도가 극적으로 드러난 순간은 2020년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 직후였다. 연설이 끝나자마자 펠로시 의원은 연단 뒤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문을 과감히 찢어버렸다.
 
이 행동은 즉각 백악관과 공화당으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으나 펠로시 의원은 사과하지 않았다.
 
그는 이후 민주당 의원들에게 "트럼프 대통령이 연설에서 진실을 찢었기 때문에 나도 연설문을 찢었을 뿐"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와 오바마케어 등의 입법 성과 때문에 펠로시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의 공격을 받는 대표적인 정치인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펠로시 의원을 "미친 낸시"라고 비난해왔다. 이날도 펠로시 의원을 "사악한 여자"라고 부르며 불출마 선언에 대해 "기쁘다"고 말했다. 
 
펠로시 의원도 최근 CNN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지구상 최악의 존재"라고 지칭하며 거듭 날을 세웠다.
 
미 민주당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는 조 바이든 전 대통령과는 정치적 동지로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작년 대선에서 TV 토론을 계기로 바이든 전 대통령의 고령 논란이 제기되자 그에게 후보 사퇴를 요구하고, 카멀라 해리스 전 부통령을 적극 지지했다. 
 
이는 바이든 대통령의 자진 사퇴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NYT는 "정치인 딸로 태어난 펠로시는 자신이 정치인이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1987년 선거에 출마한 이후 그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고 전했다. 

국제일보 기자 kjib@kookjeilbo.com
<저작권자 ⓒ 국제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PC버전으로 보기

법인명 : 주식회사 국제일보 | 제호 : 국제일보 | 등록번호 : 인천 아01700 | 등록일 : 2008년 6월 2일 | 발행인ㆍ편집인ㆍ대표이사 회장 : 최동하 본사 : 인천광역시 부평구 충선로 9, 203호 (부평동, 이레빌딩) | 대표전화 : 032-502-3111 | 발행일 : 2008년 8월 1일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동하 국제일보의 모든 컨텐츠(기사ㆍ사진)는 저작권법 보호에 따라 무단전재ㆍ복사ㆍ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