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의식의 전환이 절실 / 김병연

  • 등록 2012.09.26 05: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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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산은 어느 때보다 청량한 바람을 내보낸다. 나무는 인간을 살리는 것을 생색도 내지 않고 끝없이 퍼주기만 한다. 계곡의 물소리는 더럽혀진 우리의 귀를 말끔히 씻어준다. 하지만 쏟아지는 뉴스들은 기도를 누군가가 조여 오는 것처럼 답답하게 만든다. 인간이 이뤄낸 물질적 결과물은 눈부시다는 말로는 부족할 지경이다. 하지만 그것들이 우리를 살리는 것만 같지는 않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단번에 알려진 것도, 인터넷이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른 것도 인간이 이뤄낸 물질적 성과물 덕분이다. 하지만 빛나는 곳의 이면은 어두운 것처럼 기쁜 소식과 함께 전해오는 나쁜 소식을 접하다보면 인간이 얼마나 사악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세계에서 삶의 질이 가장 높은 나라는 오스트리아다. 물론 1, 2위는 스위스와 번갈아 가며 차지하고 있다. 그 외에도 대학의 성취도 면에서는 핀란드와 노르웨이와 스웨덴이 우선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나라의 공통된 특징은 복지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은 뒤 민관이 합의 후 철저하게 시행해 왔다는 점이다. 약자에 대한 배려를 바탕으로 한 복지문제에 치중한 나라들이 경제적으로 튼튼한 기반을 갖고 있어 외부로부터 온 경제적 위기에도 비교적 잘 견뎌내고 있다고 한다.




삶의 질이 높은 나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공통점은 어릴 때는 경쟁 없이 자라게 하고 가진 자는 아낌없이 나누는 원칙을 지킨다는 사실이다. 단지 약자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실효성 있게 배려하는 정책을 철저하게 시행하고, 더불어 행복해지기 위한 실천 방법에 대해 적극적으로 모색한다. 또한 그들이 가진 예술의 영역에 대한 경외심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여서 위정자들도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권력을 포기해왔다고 한다. 그 덕분에 그들은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조성했고 그 결과 관광산업으로 가만히 앉아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대부분의 이론서는 답을 내려 애쓰지만 예술은 언제나 질문을 던진다. 질문을 받은 이는 그 순간부터 내면으로의 여행을 떠난다. 그래서 머리로 아는 것부터 가슴으로 느끼기까지가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이라고도 하고, 느낀 것을 실천하기가 어렵다고 해서 가슴에서 실천하는 두 손으로 가기까지가 가장 먼 길이라는 말도 한다. 아끼는 것을 내어놓기는 누구나 쉽지 않다.


 


그래서 삶의 다양성 존중과 사회적 합의가 중요한 문제이나 실천이 어렵다. 불명예스럽게도 우리는 아동 성폭행과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다. 그 중에서도 노인의 자살률은 평균의 30배가 넘는다. 아이가 늘 성폭행 당하고 사람들이 줄지어 자살하는 현상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삶의 무늬는 바라보는 남이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에서 주인이 되어 사는 이가 결정권을 갖는다. 미래의 꿈 역시 포기하지 않는 한 언젠가는 이룰 수 있다. 특별히 남다른 성공을 얻어서 이름을 떨친 사람들 중에 실패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실패는 인간을 성장으로 이끈다. 그러나 어떤 환경에서 실패의 아픔을 견디는가는 중요한 문제다. 삶의 질이 높은 나라에서는 실패의 시기를 견디는 자들이 참혹한 패배감에 빠지지 않도록 배려하는 데에 가진 자가 낸 세금을 쏟아 붓는다. 나 혼자 행복한 것은 참된 행복이 아님을 그 나라의 부자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첨단의 과학기술로 태어난 스마트폰 중독자가 되어 각자의 캡슐에만 갇혀버린 우리의 모습에서 시원스러운 공존의 해법이 나올 것 같지는 않다.




빈곤한 내면으로 인해 폐허로 내몰린 우리에게는 죽어가는 것들을 살릴 생명수와도 같은 의식의 전환이 가장 절실해 보인다.




김병연 시인/수필가

국제일보 기자 kookje@kookjl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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