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림사지 발굴(시굴)조사 중 금동여래입상 및 고려시대 寺歷 확인 -
충남역사문화연구원(원장 변평섭)에서는 청양 도림사지(조사기간 : 2009. 6. 29 ~ 2009. 9. 28, 조사면적 : 12,545㎡) 발굴(시굴) 조사중 학계가 주목할 만한 유적 유물 발굴하였다.
금번 발굴된 유적 유물은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경영된 도림사지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어, 학술적인 의미가 매우 크다.
청양 도림사지에는 도림사지삼층석탑(유형문화재 제27호)이 위치하고 있으며 인근의 장곡사와 더불어 백제시대까지 그 연원이 추정되던 사찰이었다.
금번 조사결과에서는 도림사지가 백제시대에 창건되었다는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경영되었던 寺歷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조선 초기를 전후한 시기에 대대적인 중수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번 발굴(시굴)조사는 도림사지 전체 寺域에 대한 시굴조사로 진행되었다. 도림사지는 크게 3단의 대지로 조성되었는데 조사지역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 Ⅰ지역은 고려시대 건물지가 확인되는 지점으로 건물지 주변에서 금동여래입상 1구 및 석조불 4구가 함께 출토되었다.
2단 대지에는 도림사지삼층석탑이 위치하는 지점으로 탑의 동편으로 고려시대 건물지 흔적이 확인되고 있으며,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는 3단 대지에는 많은 수의 건물이 확인되는 지점으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주춧돌과 석축, 담장 등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고 있다.
출토된 금동여래입상은 상호가 결실된 채로 출토되었는데 남아 있는 부분의 크기는 높이가 7.5㎝, 폭 4.3㎝이다.
금동여래입상의 법의는 통견이며 전신을 덮은 법의의 주름이 신체의 굴곡에 따라 다리 부분에서 ‘U'자 형태로 표현되어 있으며, 가사가 양손에 걸쳐져 좌우대칭으로 길게 내려 펴져 있다.
수인은 왼손을 어깨 아래까지 들어 올려 손바닥을 바깥쪽으로 편 시무외인의 형태이며, 오른손은 손바닥을 늘어뜨려 손바닥이 보이는 형상인 여원인을 취하고 있다.
불상의 뒷부분에는 어깨 뒤쪽으로 돌기가 2개, 발바닥 부분에도 각각 1개씩 확인되는데 뒤쪽으로 광배를 부착하고 대좌에 안치되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금동여래입상 이외에도 4구의 석불상이 함께 출토되었다. 석불상 역시 상호가 모두 결실되었으며 신체부위도 훼손된 흔적이 보인다. 5구의 불상이 모두 근접하여 출토되고 있기 때문에 출토위치에 대한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차후 정밀 발굴조사가 진행되어지면 도림사지에 존재하는 건물의 성격규명에 단초를 제공할 것으로 판단된다.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고대로부터 계룡산 인근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거점일 뿐만 아니라 영험한 산으로 추앙되며 산성과 사찰을 포함한 다양한 유적이 분포하고 있는 지역이다. 이 가운데 도림사지는 백제까지 그 연원이 추정되고 있으나 현재까지의 조사결과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판단된다」며「또한 도림사지삼층석탑과 석탑에서 출토된 금동사리함 및 ‘道林寺’銘 명문기와(국립부여박물관 소장), 금번 조사에서 출토된 금동여래입상 등 귀중한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고 특히 석불상 4구가 함께 출토되는 등, 향후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기대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