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베이징=연합뉴스)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와 ZTE를 겨냥한 유럽연합(EU)의 퇴출 압박 수위가 한단계 더 높아졌다. 중국 정부와 화웨이 측은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21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EU 집행위원회가 전날 화웨이·ZTE의 배제를 강제하는 새 사이버보안법(Cybersecurity act) 패키지를 공개했다고 전했다.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와 ZTE [홍콩 SCMP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 연합뉴스](http://www.kookjeilbo.com/data/photos/20260104/art_17689874095767_1810cc.jpg)
이동통신망에서 고위험 공급업체의 장비 사용 중단을 핵심으로 한 '5G 사이버보안 툴박스(tool box)'를 법제화하는 한편 장비 사용 규제 범위를 5G 이외로 확대한 것이 골자다. 5G 사이버보안 툴박스는 5G 네트워크의 잠재적 위험을 줄일 목적의 기술적·전략적 보안 조치 가이드라인이다.
EU는 27개 회원국에 2020년부터 자율 지침으로 주문해온 5G 사이버 보안 툴박스에 대해 이번에 법적 구속력을 부여하고 어길 경우 해당 회원국에 재정적 제재도 가할 수 있도록 했다.
EU의 이런 조치는 사실상 중국 통신장비업체를 통한 스파이 활동 가능성을 차단하고 유럽의 디지털 주권을 확보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우크라이나전 장기화 속에서 EU의 대응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EU 집행위는 작년 2분기 회원국들에서 특정 국가가 지원하는 사이버 공격 사건이 전년 동기 대비 22% 증가한 것을 포함해 작년 한 해 동안 관련 사건이 77건 발생했으며, 이 때문에 EU는 3천910억달러 수준의 피해를 봤다고 밝힌 바 있다.
헤나 비르쿠넨 EU 기술 주권·안보·민주주의 담당 수석 부집행위원장은 "이 같은 위협은 민주주의·경제·삶의 방식에 대한 전략적 위험"이라면서 "새 사이버보안법 패키지는 사이버 공격에 대응할 수단을 갖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EU의 새 사이버보안법 패키지는 사실상 화웨이·ZTE 등을 고위험 공급업체로 규정하고, 이들 업체 장비를 회원국 통신망에서 단계적으로 철거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특히 통신사업자들은 고위험 공급업체 목록 발표 후 36개월 이내에 해당 업체 장비의 핵심 구성 요소를 교체하도록 정했다.
고위험 공급업체 목록은 사이버공격·해킹 등과의 연관 여부, EU 차원 보안 평가에서의 우려 제기 여부, 특정 정부의 행위에 이의를 제기할 독립적 사법부나 민주적 감시 체계가 없는 경우 등의 기준으로 정하도록 했으나, 이에 따르면 자연스럽게 중국 화웨이·ZTE가 특정된다는 대체적인 지적이다.
여기에 새 사이버보안법 패키지는 5G 통신망뿐 아니라 태양광 에너지 시스템, 전력 인프라, 보안 스캐너, 클라우드, 드론 등 국가 안보와 직결된 18개 핵심 분야 전반에 걸쳐 중국산 장비 사용을 규제하는 내용을 포함한다.
SCMP는 새 사이버보안법 패키지를 바탕으로 EU 회원국이 중국을 사이버 보안 및 정보 유출 고위험 국가로 지정할 경우 화웨이·ZTE 이외에 커넥티드 차량, 전기 및 수도 공급·저장, 클라우드 컴퓨팅, 의료기기, 우주 서비스, 반도체 등 분야 중국 기업들의 사업도 제한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신문은 중국 당국이 '새로운 생산력' 육성에 집중하는 점을 고려할 때 EU의 이번 조치가 중국과의 갈등을 더 깊게 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은 제15차 5개년 계획(2026∼2030년) 기간에 고품질 발전을 하려면 신품질(新質) 생산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 구체적으로 인공지능(AI), 로보틱스, 전기차, 생명과학, 신소재, 디지털화, 탈탄소화 등의 첨단 기술과 혁신 바탕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의미한다.
그동안 EU의 5G 사이버 보안 툴박스 자율 지침에 스페인·그리스 등 EU의 일부 회원국은 우수한 성능과 저렴한 가격을 이유로 중국산을 선호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새 사이버보안법 패키지에 대한 EU 내 반응이 주목된다.
중국 정부는 EU가 부당한 처사를 한 것이라며 철회를 요구했다.
궈자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중국은 보도에 주목했고, 이에 엄중한 우려를 표한다"면서 "중국 기업은 장기간 유럽에서 합법적으로 경영해왔고, 유럽의 통신·디지털 산업 발전을 촉진해왔으며, 유럽 민중에 양질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해왔다"고 말했다.
궈 대변인은 "어떤 사실·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비(非)기술적 기준으로 제한을 강행하고, 기업의 시장 참여를 금지하는 것은 시장 원칙과 공평 경쟁 규칙을 심각하게 위반한 것"이라며 "우리는 EU가 보호주의의 잘못된 길로 더 멀리 가지 않기를 촉구한다. 계속 간다면 중국은 필요한 조치를 취해 중국 기업의 합법적 권익을 단호히 수호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화웨이 역시 대응 의지를 피력했다.
유현옥 화웨이코리아 상무는 "사실에 기반한 증거나 기술적 기준이 아닌 국적을 기준으로 특정 비EU 공급업체를 제한·배제하는 입법 제안은 EU의 기본법 원칙인 공정성·비차별성·비례성에 위배되며 세계무역기구(WTO) 부합하지 않는다는 게 화웨이의 공식 입장"이라며 "화웨이는 향후 입법 절차의 전개에 따라 법적·제도적 대응을 포함해 정당한 권익 보호를 위해 모든 조치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