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연합뉴스) 법원 판결에 대한 헌법소원을 허용하는 재판소원 제도 도입으로 헌법재판소의 사건 부담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20일 헌재가 이에 대처할 수단으로 사전심사 제도 설계의 쟁점을 짚어보는 내부 발표회를 열었다.
이날 논의에서도 기존 각계 지적처럼 사건 폭증에 따른 과부하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헌재가 낭떠러지로 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사건 선별 등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시간과 재력이 있는 사람만 유리한 제도, 결국 '4심제'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결국 '소화불량'에 걸려 탈이 날 수 있다는 것으로, 결론은 '걸러내기' 즉, 사전심사를 강화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방법론으로는 중요 헌법 쟁점을 기준으로 삼기, 재량껏 선별하기부터 헌법재판관 증원, 대법원과 역할분담까지 갖은 아이디어가 개진됐다.
'개문발차'식으로 일단 시행에 들어간 터라, 입법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시됐다.
구체적으로 미국 연방대법원의 사건선별 절차와 같이 헌법재판관 전원이 관여해 '중요한 쟁점'을 가진 사건을 선별해야 한다는 의견, 헌법재판관 수를 15명으로 늘리는 대신 지정재판부에서 각하뿐 아니라 기각 결정도 가능하게 하자는 의견이 제시됐다. 이번 재판소원법(개정 헌법재판소법)으로는 사건 선별이 어려우므로 입법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우리 재판소원 도입의 모델로 삼은 독일과 비교하더라도 개정 헌재법에 따른 재판소원 청구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 헌재의 업무부담이 크게 증가하게 됐다는 쓴소리도 나왔다.
헌재 헌법실무연구회(회장 정정미 재판관)는 이날 오후 헌재 대강당에서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과 사전심사제도'를 주제로 내부 발표회를 진행했다.
행사는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김하열 교수가 좌장으로 진행하고, 발제는 법무법인 클라스한결 김진한 변호사가 맡았다. 토론에는 정광현 한양대 로스쿨 교수, 서경미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 이재강 헌재 헌법연구관이 참여했다. 참여 교수들은 모두 헌재에서 헌법연구관으로 일한 바 있다.
이번 내부 발표회에 법원이나 시민사회계 등의 외부 인사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김진한 변호사는 발제문에서 "만일 지금 잘못된 길에 들어선다면 자칫 헌재를 낭떠러지로 모는 일이 될 수도 있다"며 사전심사를 통한 재판소원 제도의 정립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앞서 재판소원을 시행해온 독일의 사전심사 제도 문제점을 지적하며 독일 '벤다 위원회'의 개혁안과 미 연방대법원의 사건 선별 절차를 시사점으로 제시한다.
독일에선 1990년대 사건 부담이 크게 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벤다 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위원회 개혁안의 핵심은 '재판관 3명으로 구성된 소부가 아닌 전원재판부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건을 재량껏 선별하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김 변호사는 "우리 사전심사 제도 역시 비록 법에서 소부(지정재판부) 재판을 규정하고 있지만, 적어도 정신적으로는 전원재판부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운영돼야 한다"며 "다양한 관점이 사전심사 단계에서 반영될 수 있고, 자의적 판단 가능성이 축소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특히 헌재가 '개별 당사자의 권리구제'가 아닌 '중요한 헌법적 쟁점에 대한 기본권 확립'이라는 본래 역할과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만약 개인의 권리 측면만 강조한다면 '4심제'라는 국민적 우려에 부합하는 현실이 될 수 있고,시간과 재력이 있는 당사자에게만 유리한 제도가 될 것"이라며 "헌재가 모든 기본권 침해를 구제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스스로 해방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특히 헌재 사건 부담 폭증을 막기 위한 미 연방대법원의 '쟁점사항 제도'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신청인이 연방대법원에서 판단받으려고 하는 법적 쟁점으로, 대법원은 사건을 선별하는 기준으로 쟁점사항의 중요성을 결정적 잣대로 삼는다.
다만 미 연방대법원과의 단순 비교도 한계는 있다. 연방대법원은 근본적으로 많은 사건을 다루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 실정과는 차이가 있다. 헌재가 따로 없는 미국에선 연방대법원이 법률의 위헌 여부 판단 등 헌재 역할도 맡는다. 대법원에 올라오는 사건 자체가 매우 제한적이어서 1년에 다루는 사건이 대략 100여건 안팎으로, '가장 집중해야 할' 시대적 사건의 해결에 역량을 집중하는 형태다.
헌재는 재판소원 도입으로 한해 1만∼1만5천건의 사건이 접수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사건 폭증에 대처하기 위해 사전심사 단계에서 상당수를 각하해 걸러내겠다는 계획이다.
반면 정광현 한양대 교수는 이런 제안에 대해 "사건의 중요성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지침 같은 것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그런 식의 사건 선별은 매우 정치적이거나 자의적인 재판 거부로 비칠 위험이 크다. 법치국가에서 용인되기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대안으로 헌법재판관 수를 현행 9명에서 15명으로 늘리자고 제안했다.
정규 구성원(재판관) 9명에 예비 구성원을 6명 늘리자는 것으로, 현재 3명인 지정재판부는 정규 구성원 3명과 예비 구성원 2명씩 총 5명으로 재편하자는 아이디어다. 이 경우 지정재판부가 명백히 부적법한 헌법소원을 각하하는 것뿐 아니라 명백히 이유없는 헌법소원을 기각할 수 있도록 하면 헌재가 바로 전형적 사법적 판단사항에 들어가 그 역량을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또 직접적 기본권 침해 통제는 헌재가 맡되, 소송법 규정을 위반했다는 식의 법률 위반에만 바탕한 기본권 침해는 대법원이 관장하게 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법률 해석에 있어선 대법원이 최고 권위를 가진 사법기관이란 점에서다.
정 교수는 우리 재판소원 제도의 모델로 삼은 독일과 비교하더라도 개정법상 재판소원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 헌재에 과도한 업무 부담이 지워지게 됐다고도 지적했다.
정 교수는 "우리 재판소원도 독일처럼 '입법권력의 통제'에 집중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며 "헌재의 부담을 극도로 가중할 위험이 있고 대법원과 합리적 권한 배분의 관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두 번째 토론자인 서경미 성균관대 교수는 '헌법적 중요성 관점에서 사건 선별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공감하면서도 이번 개정 헌재법으로는 그와 같은 해석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헌재가 과도한 사건 부담에 파묻히지 않고 기본권 보장의 최후의 보루로서의 역할을 하려면 "입법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앞서 입법 과정에서 헌재는 재판소원의 사유를 '중요한 헌법적 의미를 가지거나 기본권 보장에 필요한 경우'로 한정하자고 제안했으나 채택되지 않은 채 법이 통과됐다.
개정 헌재법이 정한 재판소원 청구 사유 1호는 '법원의 재판이 헌재의 결정에 반하는 취지로 재판함으로써 기본권을 침해한 경우'로 돼있다. 서 교수는 "재판의 결과는 항상 기본권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어 기본권 침해 요구만으로는 대상을 적절히 한정하고 있지 않다"며 "얼마든지 예측 가능성이 확보되지 않은 방향으로 청구 사유가 확장될 수 있다"고 했다.
서 교수는 이번 재판소원법이 확정 '판결'이 아닌 '재판'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을 두고도 "조문을 보는 순간 오싹해졌다. 불기소 처분을 오랜 시간 끝에 법원에 보냈는데 재정신청 기각 결정 등이 다시 헌재에 돌아오나 하는 염려, 어느 범위까지 헌재로 넘어올지가 걱정"이라는 의견도 밝혔다.
또 재판소원 청구 사유로 '당해 재판에 적용되는 법률의 위헌 사유'를 포함하느냐의 문제가 기존 제도와 중복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현행 헌재법 68조 2항이 '법률의 헌법 위반 여부가 소송에서 재판의 전제가 되고,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으나 기각된 경우' 법률의 위헌성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고 있어서다.
서 교수는 "중복을 감수하면서 입법자가 정리해 줄 때까지 기다릴 것인지, 68조 2항(과 같은 재판소원을) 걸러 봐야되는지 봐야한다"며 "현행 68조 2항이 당사자 입장에서 훨씬 효율적 권리구제 방법일 것이므로 (당해 재판에 적용되는 법률의 위헌성을 다투는 경우는 재판소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