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겸손과 대학이 사는 길 / 김병연

  • 등록 2018.07.18 14: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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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이란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를 말한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이 잘났더라도 그 사실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을 절제한다.
 
우리 사회에는 학식이 높고 능력도 출중한데 그만큼 평가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가끔 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겸손하지 못하면 그 능력은 빛을 발하지 못한다. 지식과 능력을 키워 자신감이 충만하고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 찰 때 겸손해지기 쉽다.
 
사람이 어떻게 하면 겸손할 수 있을까.
 
첫째, 자기성찰과 반성을 통해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채우기 위해 노력하고 남을 비방하지 말아야 한다. 논어에 세 사람이 걸으면 그 중 분명히 배울 사람이 있다는 말이 있다. 항상 배우는 자세를 견지하고 남을 비방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배려를 바탕으로 상대를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누군가를 대할 때 항상 역지사지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셋째, 오늘날은 자기 PR 시대이지만, 그것도 교만이나 오만이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해야 한다.
 
넷째, 적극적인 역지사지의 자세로 상대방의 장점을 칭찬해야 한다. 겸손은 역지사지에서 나온다.  
 
자신을 낮출 수 있는 사람이 겸손할 수 있고, 겸손은 자기를 낮추는 것이지만 결국 자기를 세우는 것이다. 겸손한 사람이 훌륭한 일을 했을 때는 존경이라는 감동이 생기고 오만한 사람이 같은 일을 했을 때는 시기와 질투라는 감정이 생기기 쉽다.
 
열정으로 키워온 능력과 성취는 겸손이라는 조명을 받을 때 더욱 찬란한 빛을 발할 수 있다.
 
겸손으로 주위 사람을 즐겁게 하고 사회를 밝게 한다면, 그것은 분명 사회의 등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엔 대학 졸업 시즌이 되면 꼭 보도되는 기사가 있었다. 대학 수석 졸업자와 수석 졸업자가 받은 졸업 학점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수석 졸업자가 받은 대단한 대학 졸업 학점에 경이를 표하곤 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이러한 기사를 만나기도 힘들뿐만 아니라 보도되더라도 특별한 이야기 거리가 되지 못한다. 전 학년 A⁺를 받은 학생을 만나는 것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신문 보도에 따르면 H대학은 75%의 학생이, S대학은 61%의 학생이 A학점을 받았다. 셋 중 둘은 A학점을 받은 것이다. 이런 지경이면 A학점을 받지 못한 학생이 오히려 이상하다. 이러니 수석 졸업자의 성적이 무슨 뉴스거리가 되겠는가.
 
필자는 학점이 부풀려진 원인으로 대학의 양적 팽창과 그릇된 제자 사랑을 지적하고 싶다. 현재 대학 진학자는 고등학교 졸업자의 70%(한때는 84%) 정도이고 원하는 일자리는 이에 크게 못 미치는 상황이다. 1980년대를 지나면서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속도는 그 전에 비해 둔화되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 대학은 엄청난 양적 성장을 했다. 이제는 국내에서 신입생을 수급하기 힘들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대학입학정원을 강제로 감축해야 될 지경에 이르렀다.
 
구조적으로 구직자가 일자리보다 크게 많아졌다. 이런 취업 환경에서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 대학들이 성적을 남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되고 보니 학점이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취업지원자의 성적은 이제 지원자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지 못한지 오래다. 인기 있는 기업에는 A학점을 받은 지원자들이 넘쳐 난다. 이러니 인사 담당자들이 어찌 성적을 평가 대상으로 하겠는가. 이런 현상은 학점의 불신을 넘어 대학 교육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기업들은 언제부턴가 대학의 학점 대신 다른 평가 기준을 제시하고 여기에 합당한 결과물을 지원자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대학에서 주는 영어 학점 대신 토플 성적이나 토익 성적을 요구하고, 그것도 믿을 수 없게 되자 어학연수를, 그것도 믿을 수 없게 되자 이제 직접 영어 면접을 실시하고 있다. 또 직무 능력을 믿을 수 없어 대학 외부에서 실시하는 공모전 입상 성적을 요구하거나 인턴이나 연수 실적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측은 학생들이다. 대학에서는 우수한 학점을 받으려고 경쟁해야 하고 흔히 말하는 취업 스펙을 쌓으려고 발버둥을 쳐야 한다. 시간과 경제적 희생이 너무도 크다. 대학 등록금만 해도 만만치가 않은데 해외 연수도 다녀와야 하고 취업 스펙을 쌓기 위해 학원도 다녀야 한다.
 
이 시대의 학생들은 우리 역사상 가장 우수한 능력을 가진 학생들인 데도 불구하고 가장 큰 희생을 치르고 있다. 커다란 사회적 낭비이다. 모든 구직자가 영어를 잘할 필요도 없고 공모전에서 우승할 만한 능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우리 사회의 모든 일자리가 그런 대단한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많은 일자리에서는 영어가 필요 없다. 그리고 일상적인 단순 업무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사회적으로 엄청난 낭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이 먼저 달라져야 한다. 기업에서는 대학생들의 과도한 능력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바라지도 않았는데 보너스로 대단한 능력을 키워오는데 누가 마다하겠는가. 기업으로서는 어찌 보면 횡재인 셈이다. 대학 학점만으로도 학생들의 능력을 평가하는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
 
대학은 학점을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제대로 평가하려면 학점 평가방식을 절대평가에서 상대평가로 바꾸되, 학점별 강제분포비율을 적용해야 한다. 이를 법률이나 대통령령으로 정하여 대학마다 학점별 비율을 일정하게 하고 학점의 변별력을 높여야 한다. 학점에 대한 장기적 불신은 대학의 불신으로 이어지고 대학 붕괴라는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제는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대학은 제대로 가르치고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그것이 대학이 사는 길이다.


김병연 / 시인 · 수필가 

국제일보 기자 kookje@kookjl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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