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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단편소설

형언 할 수 없는(Indescribable)_제1화 / 김별

Indescribable



하얀 빛줄기가 방안을 감쌌다.


한줄기 빛이 가리키는 곳으로 눈이 향했다.


작은 탁자에 놓여있는 먹다 만 커피 잔,무심하게 놓인 듯한 반지,


서글프게 보이는 낡은 책장.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직 잠들어있는 그를 바라보고 다시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를 깨운 한줄기 빛은 하얀 커튼 사이로 강렬하게 다시 나를 내리쬔다.


침대에서 발을 띄고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하얀 커튼을 열고 창 밖을 내다 본 내 눈에 처음 들어온 건 하얀 눈이었다.


나지막한 산들과 평화로운 대지들이 하얗게 어우러져 있는.


어느새 작은 사슴들이 하나 둘씩 나타났다.


하얗게 서려있는 창문을 살며시 입김으로 지우며 그들을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고요하기 그지없는 이 곳.


벌써 3년 째 이곳에 머물고 있다.


당신과 함께 들어온 이 곳.


더 이상 나의 노래도 할 수 없는,당신도 더 이상 환자를 돌볼 수 없는.


우리 둘만 의지하고 살아가는 이곳의 아침은 언제나 똑같은 일상을 준다.


아침을 열고 당신을 깨우고 같이 차를 마시고 같이 아침을 먹고,


같이 산책을 하고 같이 책을 읽고, 기억을 순간 순간 잃는 당신에게 세월을 속삭이고,


그리고 다시 어둠에 눈을 감고.


오늘 아침은 특별한 날이다.


아이들이 오기로 한 날, 내 기억이 맞다면.


핸드폰을 열어 날짜를 본다.


2월 2일.


큰 딸 생일날이다.


서둘러 그 사람을 깨우고 옷을 입히고 세면대로 향하게 했다.


깨끗해진 모습으로 나온 그 사람과 방안을 나와 로비로 향했다.


아침 7시,


우리에겐 이른 시간이 아니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로비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다.


난 그이를 조심히 로비 소파에 앉히고 데스크 스케줄러에게 다가갔다.


"오늘 2월 2일 맞죠?"


"내 딸 오는 날 맞죠?"


"잠시만요.확인해볼게요."


"네. 맞네요. 잘 기억하시고 계셨네요."


"즐거운 아침 식사 하시고 따님 기다리시면 되겠어요."


"감사해요."


데스크를 뒤로 하고 로비 소파에 앉아 있는 그를 바라봤다.


초점 없는 눈동자는 큰 창문 넘어 하얀 들판을 응시하듯 보였다.


무엇을 생각하는걸까.무엇을 기다리는걸까.


그는 항상 기다린다고 말했다.


그가 태어나고 40일만에 돌아가신 아버지도 기다리지 않았다.


85세를 넘기고 돌아가신 어머니도 기다리지 않았다.


그럼, 무엇을..


항상 아침마다 내게 건네는 첫 말,


"오늘은 오겠지?"


"누가요?"


"당신은 몰라."


그에게 다가가 휠체어 손잡이를 잡는다.


"왜이리 늦었어? 누가 오기라도 하나?"


"오늘 진이 생일이자나요. 진이가 올거에요."


"진이? 그게 누구지?"


"당신 큰 딸이자나요."


"내겐 딸이 없어. 당신만 있지."


"그래요. 알겠어요."


"그 사람은 오늘도 안오려나?"


또다시 기다리는 사람의 얘기를 꺼냈다.


"누구요?"


"그 있자나, 키 작고 마르고 하얗고 광대뼈 튀어나오고 안경 쓰고.."


"남자에요?"


"그래, 남자야."


"아주 똑똑하고 유머 있고 인기가 많은 남자지."


"당신은 그 사람을 어떻게 아는데요?"


"나? 그야 잘 알지."


"어릴 적 같이 놀았던 친구니까."


"연락을 해봐야 하는데, 너무 안 오네."


"전화번호가 어디 있었지? 내가 번호가 기억이 안나서 말이야."


"당신이 찾아봐 줘."


"그래요. 그럴게요."


다시 휠체어 손잡이에 손을 얹고 그를 살며시 끌었다.


늦은 아침 식사를 하게 된 나는 그이의 허기짐이 걱정되어 휠체어를 빨리 끌어


식당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짧았던 희열의 탄식이 회한의 얼굴로 바뀌는 걸 본 순간,


걸음이 빨라지지 않았다.


김별  |  글 쓰는 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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