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눈물로 가려진 얼굴과 편지를 부여 잡고 주저 앉았다. 한참을 울다 손에 거슬리게 잡히는 편지 한 장이 뒤 장에 붙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머지 한 장은 나에게 쓴 편지였다. ‘친애하는 진’ 나 마들렌이에요. 저번에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가 마음에 걸려 이렇게 다시 펜을 들었어요. 이렇게 가기엔 아버지가 마음에 걸렸거든요. 아버지 병명을 듣고 놀랐어요. 알츠하이머.. 마음이 아팠답니다. 당신도 많이 힘들겠군요. 내가 쓴 편지 보고 많이 놀랐죠? 당신은 나의 마지막 길목에 추억과 기쁨을 안겨 주었어요. 보답하고 싶었어요. 아버지에게 선물을 드리고 싶었어요. 기억을 많이 잃어가신 다기에.. 내가 아닌 아버지가 사랑했던 아내를 떠올리며 썼어요. 무례했다면 용서해줘요. 몇 년 동안 우리가 주고 받았던 편지엔 아내의 그리움이 많이 담겨 있었거든요. 내가 잠시 만이라도 아버지의 고단한 마지막 길에 웃게 해드리고 싶었어요. 이제와서 지훈씨가 힘내길 바라지는 않아요. 그저 내 편지가 지훈씨에게 미소를 갖게 했다면, 난 그걸로 만족해요. 진!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웃길 바래요. 평안하길 바래요. 그리고, 나에게도 몇 년 동안 웃게 해줬던 거 잊지 않을게요. 이제 웃으며 편
서울로 돌아 온, 일주일 후 아버지의 병환이 더 깊어졌다. 우리는 엄마 때와는 달리침착 하려고 애썼다. 이건 잠시 헤어짐이야. 영원한 것이 아니야. 아버지를 병원에 입원 시키고, 그 후 울고 웃고 사랑하며 아버지를 엄마에게 보냈다. 서울에 돌아 온 지 3주만의 일이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에 들어오자마자 내 눈에 띈 건 피아노였다. 그제서야 현실을 직시하고바닥에 주저 앉았다. 현관에 늘어져 있는 아버지의 신발들 위로. 그 후, 무려한 하루들을 보냈다. 제 정신이 든 건, 아버지가 가신지 일주일만이었다. 주말이었다. 난 늦잠을 자처하고 침대에서 한발 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눈을 간신히 뜨고 몸을 일으켜휴대폰을 찾았다. 주머니 속에서 잡힌 휴대폰을 열었다. 무수한 통화 기록과 문자들이 와 있었다. 그 순간, 내 눈에 유독 거슬렸던 건 소셜미디어에 알림이 뜬 디엠이었다. 마티유였다. 열어보기가 두려웠다. 천천히 엄지 손가락으로 밀었다. 마들렌이 떠났다는 내용이었다. 근데, 날짜가.., 어떻게 이런 일이.., 그 순간, 그동안 쌓여 있던 감정들이 기다렸다는 듯 터지며 내 몸을 몸서리치도록 감싸고 있었다. 마들렌과 아버지가 가신 지, 한 달이 지났
난 출간 준비를 서둘러 진행하고 출판사에 양해를 구하고 프랑스로 떠났다. 처음 와보는 파리, 공항엔 마티유가 마중 나와 있었다. 우린 세월의 무게만큼 첫 인사에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포옹했다. 공항에서 마들렌에게 가는 길은 길게 만 느껴졌다. 아버지의 편지를 가방에 담은 채. 파리 근교의 요양원에 도착했다. 난 무거운 마음과 함께 마들렌의 병실로 들어갔다. 마티유는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창문 옆 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 사진에서처럼 하얗고 여린 그녀였다. '마들렌!’ 마들렌이 내게 눈을 돌렸다. 그녀는 단번에 나를 알아보았다. 우린 긴 포옹을 했다. 그녀의 몸은 한 줌밖에 되지 않았다. 난 가방에서 아버지의 편지를 꺼냈다. 그녀의 눈이 순간 고통의 빛처럼 반짝였다. ‘친애하는 마들렌’ 당신이 그렇게 아프다니요. 당신이 그렇게 힘들다니요. 내가 당신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마음이 아프오. 몇 년 간 당신은 나의 최고의 친구였소. 우리가 이렇게 머나먼 곳에서 이어져, 서로를 위로하고 즐겁게 해 준 당신, 평생 잊지 못할 거요. 떠난다고 하니 말리지는 않겠소. 그것이 당신이 원하는 일이라면, 평안해지는 길이라면, 난 당신을 언제나 지지하오. 다만, 신
'친애하는 진’ (내게 쓴 편지였다.) 아버지에게는 보여드리기 힘들 거 같아 당신에게 써요. 저는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거 같아요. 아버지가 제 편지를 계속 기다릴 거 같아서 마음이 아파요. 전 하루 하루 극심한 고통과 싸우고 있어요. 이렇게 잠시 나마 고통이 멈추면, 편지를 쓰기 위해 침대 위에서 글들을 나열해요. 그러가도 힘이 이유 없이 쭉 빠지면, 눈을 감아버리게 되죠. 진! 이제부터 힘든 얘기를 꺼내려 해요. 난 하루에도 셀 수 없는 고통과 함께 해요. 고통이 잠시 멈추면 놓칠까 휴대폰에 담겨 있는 드뷔시의 달빛을 켜놓죠. 이 음악이 이렇게 외롭고 쓸쓸한 음악인 줄 몰랐어요. 아버지가 얼마나 외로우셨을지 느껴져요. 달빛에 비친 고단한 슬픔에서 아내를 찾고 싶었던 거 같아요. 슬프지만 유일하게 하얗게 밝혀 줄 달이니까요. 진! 난 이제 리스트의 위안이란 음악이 위로가 되지 않아요. 같이 있는 것 만으로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었던 내 남편도 없고, 위로를 전해 주고 싶었던 아버지에게도, 내 힘을 다할 수 없게 되었으니까요. 진! 난 다음달에 떠나려 해요. 너무 고통스럽거든요. 내 자신에게도, 아버지에게도. 몇 년 동안 행복한 시간을 안겨
‘봉주르, 지훈!’ 당신이 걱정되는군요. 지훈. 저번 편지의 당신의 쓰라린 마음이 담겨있던 것을 보고 나도 많이 울었답니다. 나 또한 남편을 병으로 먼저 보냈기에, 마음이 아팠답니다. 인생은 이렇게 허망하고 슬프기만 한 걸까요. 우리만 알 수 있는 인생의 정점에 서있기 때문인 걸까요. 젊은 날 우리의 인생이 이렇게 가슴 아프고 고독하고 외롭고 쓸쓸할 줄 알았을까요. 거리에는 온통 젊은 사람들의 웃음소리, 사랑하는 이들 천지인데, 그들도 나중에 우리처럼 외롭고 쓸쓸하고 후회가 많은 삶을 살게 될까요. 그때 알았다면 우리는 잘 살고 있었을까요. 후회도 없고 외롭지도 않고 쓸쓸하지도 않고. 우리도 처음 겪는 노년이고 병들어가고 상실에 사로 잡혀 살고. 이런 마음으로만 산다면 노년에 오는 상실감은 더 두 배가 되지 않을까요. 나는 당신이 후회스러운 추억도 그리운 마음도 아직 당신 곁을 지키고 있는아이들과 더 대화로 풀어나가길 바래요. 당신의 아내는 당신을 원망하지 않을 거에요. 당신을 사랑했으니까요. 당신도 자책감에서 이제 벗어나길 바래요. 아내가 원하는 것은 당신이 남은 인생 행복하게 사는 걸 거에요. Madelein, Paris, France 그렇게 아버지와 마
‘친애하는 마들렌’ 마들렌, 당신의 저번 편지는 내게 많은 위로가 되었소. 오늘 서울의 날씨는 오랜만에 햇빛이 가득합니다. 저의 일상이라.. 특별한 일상은 없지만, 당신 편지가 내겐 요즘 가장 기다려지는 일상이 되었소. 사람에게, 편지를 통해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걸 이 나이가 돼서 처음 알았소. 물론, 아내랑 연애 할 때 우리는 편지를 주고 받긴 했었지만 말이오. 아내와의 편지 이야기를 꺼내다 보니 아내와 연애편지를 주고받고 연애 하던 그 시절이 다시 떠오르는군요. 아내는 형제가 없는 무남독녀로 혼자 자랐소. 그러기에, 아내의 집에선 애지중지 하는 딸이었죠. 부유한 집안이었소. 철광업을 하시던 장인 어른. 언제나 저를 지지해주고 아껴주고 믿어주신 점잖으신 어른. 사실, 아내가 저보다 두 살 위랍니다. 저는 아내에게 마음에 들기 위해 참으로 여러 가지를 했던 거 같소. 데이트 하는 날엔 언제나 그녀 집 앞에서 기다리고 집으로 돌아갈 때도 집 앞까지 데려다 주고. 그 세월을 5년 정도 한 거 같소. 힘들지 않았소. 그만큼 아내를 사랑했었으니 말이오. 사실, 우리가 결혼을 한다고 말씀드렸을 땐, 반대가 심했소. 내가 무일푼 학생이었으니까요. 그래도 저를 믿어준
‘봉주르, 지훈!’ 당신의 편지는 잘 읽었어요. 지훈. 인간은 누구나 미완성 투성인 나약한 생물체지요. 어차피 후회해야 하는 일은 후회로 남겨둬야 해요. 후회마저 없다면 살아갈 수 없으니까요. 그건 죽은 거나 다름없으니까요. 당신의 아내는 어쩌면 현명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네요. 아마 당신의 일탈을 알고 있었을 거에요. 여자의 그런 감각은 살아있으니까요. 가족을 지키기 위함 이었겠죠. 하지만 너무 괴로워하지는 말아요. 당신의 아내가 그냥 아무 말 없이 떠났다는 건, 용서했다는 의미이니까요. 난 이제까지 당신과 나눈 편지에서 당신을 읽었어요. 당신은 누구보다도 자상했을 거고 사랑이 많았을 거고 아껴줬을거라는걸요. 우리의 얼마 남지 않은 인생에, 이렇게 마나 서로의 아픔과 외로움을 달래고 있다는 자체 만으로 큰 축복이라 생각해요. 주님께 돌아가기 전에 회개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걸 요. 우리를 이어준 당신의 따님은 훌륭하고 효가 많은 사람 같아요. 당신을 많이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도 자상하고 다정한 아이들이지만, 당신 따님 같은 생각은 하지 못했으니까요. 지훈, 오늘 여기는 햇살이 따듯하네요. 저의 편지가 당신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하루입니다.
'친애하는 마들렌’ 당신의 편지는 잘 받았소. 무척 아름답고 느리게 들리는 편지 같았소. 내 귀에는 평화롭기까지 말이요. 다음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하셨죠. 저번 편지에서 언급한 데로, 난 후회와 회한이 많은 사람이오. 모든 것을 털어 놓는다면, 분명 당신도 나에게 실망할 거요. 그게 두렵긴 하오. 40대 후반에 접어 든 무렵, 안정된 생활에 접어 들었던 시기, 서울에 있는 음악 대학에 피아노과 전임교수로 자리를 잡았고 큰 아이는 본인이 하고 싶어하던 문예 창작과 대학에 입학했고, 둘째는 음악 전공을 위해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소. 나와 아내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던 때요. 안타깝게도 아내는 결혼하고 같이 독일로 유학을 떠나려 했지만, 큰 아이가 허니문 베이비로 우리에게 찾아왔기에 우리는 서울에 눌러 앉아 본가에 들어가서 살 수 밖에 없었소. 내겐 어머니와 형제들과 어우려 의지하며 평화롭고 안정되게 살 수 있는 시기였지만, 아내에겐 시댁에서 살아야 한다는 엄청난 부담감이 컸었을 거요. 프랑스 유학을 끝내고 우리는 바로 결혼을 했기에, 돈도 없는 가난한 부부나 다름 없었죠. 거기에 큰 아이까지 태어났으니, 난 생계를 책임져야 했소. 다행히 한
‘봉주르, 지훈!’ 당신의 긴 이야기는 감명 깊게 잘 읽었어요. 저의 긴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하셨죠. 제겐 그다지 특별할 게 없는 인생이랍니다. 첫눈에 반한 사람과 불같은 사랑을 한 일도 없죠. 프랑스 인근 변두리 시골마을에서 자란 저는, 글자만 간신히 배울 수 있는 가난한 집 네 번째 딸로 태어났어요. 우린 모두 여섯 자매랍니다. 모두 딸이지요. 포도 재배하는 일을 도우며 자랐습니다. 큰언니는 집안일에는 뒷전이고, 본인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혼자 힘으로 끝까지 공부를 하고, 결국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죠. 우리집의 지식인이자 자랑거리는 큰 언니 밖에 없죠. 우리 아버지는 포도주를 담그는 일, 포도주를 관리하고 맛을 보는 일, 소물리에가 되고 싶어 하셨어요. 하지만 결국 포도 재배하는 일로만 그치셨죠. 어릴 때 아버지에게 왜 소물리에를 안하냐고 여쭤보니, 대답을 안하시더군요. 그냥 포도 재배하는 일이 적성에 맞는다고만 하셨죠. 저도 꿈이 있었어요. 큰언니처럼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저는 큰언니처럼 용기도 배짱도 없었기에 포기했죠. 아버지 농사 일을 돕고 어머니 가사 일을 도우며 어느새 20살 성인이 되어 있었어요. 그 무렵 우리
‘친애하는 마들렌’ 오늘 여기는 구름이 가득 찬 회색 하루입니다. 긴 이야기를 시작해볼까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프랑스 유학을 떠났었죠. 쇼팽의 환생이라고 믿는 나였으니까요. 20대 후반에 늦은 나이에 파리에 음대를 들어간다는 건, 모험과도 같은 일이였죠. 내 실력을 자부할 수 없는 나이였으니까요. 어릴때부터 피아노 소리를 듣고 자랐고, 자연스레 피아노가 좋아졌고, 어느 순간부터 피아노를 치고 있었으니까요. 운좋게 파리국립음대에 들어가고 거기서 아내를 만났죠. 청초하고 가녀리고 하얗고 수줍은 20대 초반의 여자. 수줍지만 왠지 도도해보여서 말을 건네기도 어려운 여자. 옷은 항상 트렌드에 맞게 세련된 정장에 머리도 그 시대에 가장 유행하는 스타일로 깔끔하게 꾸미고 다니는 궁금한 여자. 며칠 지나 서양음악사 수업에서 그녀를 발견했죠. 우린 같은 음대에 다니고 있으니, 어떤 수업에서 만나리라 생각했죠. 그리고, 한국인이라는 건 수업시간에 알게됐죠. 운명이라 생각했습니다. 내가 마음에 들어하는 여자가 한국인이라는 행운을요. 나중에 성악전공이라는것도 알게 됐죠. 노래하는 여자를 좋아하게 된 건, 아내를 만나고서부터죠. 클래식 음악을 하는 여자를요. 그녀에게 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