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싱턴=연합뉴스) 미국 백악관이 이재명 대통령의 당선과 관련해 처음 내 놓은 메시지 중에서 이례적으로 중국을 언급한 것은 이재명 정부의 미중 사이 '균형외교' 가능성에 견제구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백악관은 3일(현지시간) 한국 대선 결과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입장을 묻는 연합뉴스의 서면 질의에 '백악관 당국자' 명의로 보낸 답변에서 "한미동맹은 철통같이 유지된다"고 밝혔다.
그런 뒤 백악관은 "한국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진행했지만, 미국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하며 반대한다"고 덧붙였다.
동맹국인 한국의 대선 결과에 대해 논평하면서 제3국인 중국에 대해 언급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백악관의 입장을 액면상으로 보면 중국이 한국 대선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시도했을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면서, 한국 새 정부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행사를 견제한 것으로 읽힐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이 대통령이 앞으로 중국과 일정한 '거리두기'를 할 것을 기대 내지 요구하는, 한국 새 정부에 대한 메시지 성격이 더 강해 보인다.
이런 이례적 메시지에는 관세를 시작으로 점차 확전 양상을 보이고 있는 미중 갈등 상황, 그리고 이 대통령이 과거 중국과 관련해 피력한 유화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입장 등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인식이 투영돼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우선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중은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던 관세 전선에서 지난달 10∼11일 제네바 고위급 회담을 통해 서로 115% 포인트씩 관세율을 내리는 '90일 휴전'에 합의했지만 갈등의 전운은 가시지 않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희토류 등 대미 수출 통제를 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고, 중국은 미국의 반도체 관련 대중국 수출 통제 강화 조치에 대해 "차별적 제한 조치를 중단하라"며 맞서고 있다. 여기에 더해 미국은 자국내 중국인 유학생들의 비자를 공세적으로 취소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미국은 안보 영역에서 대중국 억제를 위해 인도·태평양 지역 동맹국들의 더 적극적인 역할을 유도하겠다고 선언했고, 고위 당국자의 발언을 통해 주한미군의 '태세 조정'까지 거론했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지난달 31일 아시아안보대화(샹그릴라대화·싱가포르) 연설에서 "중국이 아시아에서 패권국이 되려 하고 있다"며 "우리는 공산당 중국의 공격을 억제하는 쪽으로 방향을 재설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2025.6.4. / 연합뉴스](http://www.kookjeilbo.com/data/photos/20250623/art_17490021748723_d803b9.jpg)
그와 동시에 헤그세스 장관은 "우리는 동맹국과 파트너 국가에 자신의 역할을 다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히고,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은 긴장된 시기에 중국의 악의적 영향력을 심화시키고 국방 관련 결정의 공간을 복잡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안보는 미국에 의지하면서 경제는 중국과의 협력을 중시하는 이른바 '안미경중'(安美經中) 행보를 하지 말 것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동맹국들에게 요구한 메시지로 해석됐다.
이처럼 트럼프 행정부는 미중 신냉전의 본격 도래가 임박했음을 알리려는 듯 중국을 강도높게 견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이 대통령이 과거 대만 문제 등에 한국이 적극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 불거진 '셰셰'(중국어로 '감사합니다' 의미) 논란과, 같은 민주당 정권으로, 트럼프 1기와 임기가 겹쳤던 문재인 정부의 미중 사이 균형외교 등을 상기하며 한국의 새 정부 출범 벽두에 견제구를 던진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
결국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에 집중하며 중국과는 불편한 관계도 감수했던 윤석열 정부와는 다른 '좌표'를 한국 새 정부가 설정할 수 있다는 세간의 예상과 관련한 트럼프 행정부의 '속내'를 표출한 것으로 풀이된다.
백악관의 이번 입장은 이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면서 한미동맹, 한미일 3자 협력 등을 강조하는 '교과서적' 메시지를 낸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의 성명과 결이 달랐던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으로 보인다.
외교부서인 국무부가 외교적 언어로 입장을 냈다면 백악관은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트럼프의 선거 구호)로 불리는 트럼프 핵심 지지층의 목소리를 반영한 메시지를 낸 것일 수 있어 보인다.
실제로 일부 '마가' 인사들은 이날 한국 대선 결과 관련해 극단적인 입장을 냈다.
'극우 선동가'로서 백악관 인사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로라 루머는 엑스(X·옛 트위터)에 "공산주의자들이 한국을 접수해 오늘 대선에서 승리했다. 이는 끔찍한 일"이라는 근거없는 주장의 글을 올렸다.
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 참모였던 스티브 배넌은 엑스에 백악관 대변인이 브리핑에서 한국 대선 관련 반응이 있느냐는 기자 질문에 "그렇다. 있다. 찾아 주겠다"고 했다가 "없네"라고 답한 영상을 리트윗하면서 "한국은 망했다(fallen)"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이재명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의 이 같은 인식을 수정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전개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특히 정부 출범 초기 미국 조야가 한국 새 대통령의 입장 표명에 집중하는 시기에 한미간 소통과 대통령의 공개적 입장 표명 계기에 한미동맹 중시와 협력 강화 기조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중국대로 이재명 정부 초기에 문재인 정부 시기의 '균형외교' 복원을 강하게 요구할 것으로 보여 미중 사이에서의 '좌표 설정'은 새 정부의 중요한 숙제가 된 형국이다.
앤드루 여 브루킹스 연구소 한국 석좌는 연합뉴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한중간의 긴밀한 관계는 아시아의 동맹국들에 중국에 대한 억지력을 강화하기 위해 국방비를 증액하라고 요구하는 트럼프 행정부에게 문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 석좌는 그러면서 "트럼프 행정부는 (주한미군의 역할을 대만해협 유사시 파병 등 대중국 억제로 확대하기 위한)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된 정치적 민감성과 한중 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한국의 우려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