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을 덮고 침대에 누워 있는 그이를 바라보았다.
오늘 따라 하얀 얼굴, 하얀 발,
지금 막 태어난 신생아 같은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 거 같았다.
그이 곁으로 가서 눕는다.
그 옆에 바싹 붙어 누워 그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당신, 그거 알아요? 당신은 내게 형언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요.
내게 사랑을 주었고, 아이들을 주었고, 행복을 주었어요.
거기에 우리는 같은 병을 앓고 있어요. 이거 또한 신의 축복이겠죠.
당신이 먼저 떠나면, 내가 당신을 기억하고,
내가 먼저 떠나면 당신은 나를 어떻게 든 찾아낼 거니까요.
그런데도, 마지막 소망이 있어요. 이렇게 둘이 한 날에 같이 떠나는 걸 소망 해요.
사실 당신이 내게 고백했던 날, 나도 당신에게 고백하려 했었거든요.
의대생인데도 교회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을 멋지게 치던
당신의 모습에 반했었거든요.
우리는 같이 시작했던 거에요. 같이 시작했기에 같이 떠나야만 해요.
이 모든 기억들이 지워지기 전에 당신과 같이 떠나기를 기도해요.
당신의 얼굴과 미소와 목소리를 잊어버리기전에요.
그래야 당신이 나를 잃어도 내가 당신을 찾을 수 있으니까요.
내가 당신을 찾으면 다 얘기해줄게요.
당신이 나의 형언할 수 없는 존재라구요.
내가 당신이 찾는 형언할 수 없는 존재라구요.
김별 | 글 쓰는 연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