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시작되는 6월이 되면 매년 소방관을 괴롭히는 일들 중 하나가 벌집제거 출동이다. 말벌은 8~9월에 번식기로 활동이 가장 왕성한 시기인데 벌의 크기도 커지고 독성 또한 가장 강해진다. 최근에는 농촌과 도시를 가리지 않고 말벌집이 생겨나고 말벌에 쏘인 사람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말벌은 날씨가 더울수록 활동이 왕성해지고 도시화로 인하여 서식처가 파괴되면서 도심 쪽으로 이동하고 주택가의 처마나 창틀에 터를 마련한 벌집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말벌은 독성이 강해 노약자나 어린이 등이 쏘일 경우 쇼크로 인해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도 있으며, 건강한 성인도 경우에 따라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말벌의 습격으로부터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안전한 행동요령을 몇 가지 살펴보자. 첫째 벌을 자극하지 않도록 큰 동작을 삼가고 최대한 몸을 낮추는 것이다. 둘째 벌의 공격을 받았을 때는 당황하지 말고 재빨리 현장을 벗어나야 더 많은 피해를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말벌의 독은 상당히 강력해서 현기증 마비 호흡곤란 등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기도유지를 하고 신속히 병원에 이송해야한다. 넷째 벌의 독에 알러지성 과민반응(아나필락시스 과민증)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급격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삶에서 인맥관리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다운 사람은 도시국가의 일원으로 생활하는 사람이고 그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회적 존재라는 말로 인맥의 중요성에 대해 말했다. 우리가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야 할 인간관계는 일면 냉철하면서도 따스한 이중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특히 나의 태도에 따라 상대방의 반응도 결정이 된다. 성공은 인간관계에 달려 있다는 것은 우리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고 아는 것과 지적 능력이 우수해도 인간관계가 나쁘면 성공은 장담할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의 인맥관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양한 인연으로 관계를 맺는 관계성을 한 번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계로 맺어 나가는 것을 말한다. 모든 사람과의 관계를 점검하고 살피면서 발전시켜 나가는 것, 바로 그것이 인맥관리이다. 하지만 인맥관리는 사람 자체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과 깊이가 어우러져 인간관계를 관리하는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사람과의 유대관계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개인 및 조직의 결속력이 강화됨은 물론이고 서로를 위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 이해하는 마음, 배려하는 마
돈은 섬김의 대상이 되었다. 돈을 신과 견줄 수 있게 높이 받든다. 재물이라는 신이다. 인간은 돈의 힘에 너무 약해 쉽게 그 유혹에 넘어가고 만다. 양심과 믿음과 정의를 팔아 버린다. 돈을 전능한 존재로 믿기 때문이다. 돈만 있으면 못할 일이 없다. 이것이 많은 인간의 생각이다. 명예도, 학력도, 권력도 돈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이다. 대부분 돈이 삶을 보장한다고 믿는다. 돈을 은행에 저축하거나 부동산을 사두거나 주식 투자 등을 해 둔다. 그 돈이 미래를 보장한다고 믿고 돈에 눈이 멀어버린다. 그러나 돈이 많아지면 인간의 영적 생활도 어려워진다. 왜냐하면 보물 같은 돈에 마음이 가 있기 때문이다. 돈이 자신의 지배자가 되고, 신의 자리에 돈을 모시게 된다. 돈이 많으면 신에게 기댈 일이 거의 없어진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 돈이 많으면 병을 앓을 때 비행기 일등석을 타고 세계에서 제일 좋은 병원에 갈수 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돈을 주셨지만, 결국 하나님의 자리를 돈이 빼앗아 버리고 만다. 돈이 어느 정도 있어야 만족할까. 아무리 많아도 만족은 없다. 그 끝을 모른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풍요로 만족함이
여름의 열정으로 보람이 주렁주렁 열린 오색 빛깔로 곱게 물든 아름다운 인생의 가을 인생의 가을을 최대한 늘리고 건강하고 즐겁게 인생의 가을은 두 번째 봄이다 김병연 / 시인 · 수필가
자유란 말은 값어치가 있는 행동을 실현하는데 있어서 외적 구속이나 방해나 압력이 없이 독립하여 마음대로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상태이다. 즉, 다른 사람의 구속이나 간섭을 받지 않고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자유는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이 소유하는 절대적 가치이며 가장 소중한 권리이다. 고대 사회에서는 자유를 신분에, 중세 사회에서는 자유를 이성과 의지에, 현대 사회에서는 자유를 인간의 본질과 행위 그리고 천부적 권리에 두었다. 칸트는 “자유는 힘이며 도덕법칙의 도구”라고 했고, 플랭클린은 “자유가 살고 있는 곳이 내 고향”이라고 했으며, 제퍼슨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과 자유를 주셨다”라고 했다. 자유에 대한 정의는 이처럼 시대와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적인 부분은 생명처럼 소중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자유가 소중함은 자기 결정 능력, 즉 자신의 자유 의지에 의한 결정은 박탈될 수 없는 자유의 보증이며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불변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인 자유를 남용해서는 안 되며, 공공의 유익과 상생의 가치와 보편적 진리
과학기술의 발달로 지구촌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지구 저편의 고통스런 현실에 구호의 행사가 이뤄지고, 지구의 반대편에서 열리는 스포츠 경기를 안방에서 같은 시간대에 청취한다. 중국의 농산물로 식사를 하고, 남미의 과일과 커피로 후식을 하며, 미국의 영화로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우리의 기술, 문화, 예술 등도 세계로 뻗어나갈 기회가 점점 많아져 간다. 변화의 파도는 지속적으로 밀려오고 더욱 가속화될 것이며 이로 인한 충격 또한 커져갈 것이다. 지구촌시대는 세계를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어, 환경․인구․식량․에너지 따위의 문제를 개별 국가 차원이 아닌 전 인류의 협력으로 해결해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사회보다 개인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겠지만, 사회 없이 개인이 존재 할 수 있을까. 사는 곳이 어디이든, 무엇을 하든, 사회 속에서 살다가 주검마저 사회에 남기고 간다. 어떤 선택이건 그것은 판단의 결과물이다. 어떤 능력이건 반복적 훈련을 통하여 강화되어 간다. 판단력 또한 생각하여 판단하고 행동하고, 그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의 반복을 통해 자연스럽게 강화될 것이다. 선택과 반성의 순환이 이뤄 지지 않으면 어떤 능력도 향상되지 않을 것이다. 알지 못하는
행복(幸福)이란 욕구와 욕망이 충족되어 만족하거나 즐거움을 느끼는 상태,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안심하거나 희망을 그리는 상태에서의 좋은 감정으로, 심리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그 상태는 주관적일 수도 있고 객관적으로 규정될 수도 있지만 주관적 요소가 훨씬 강하다. 행복에는 욕구의 성취와 좌절에 따라 행복과 불행으로 나뉘는 행복이 있고, 그저 있는 그대로에 만족하는 행복이 있다. 전자는 끊임없이 또 다른 욕망을 불러오고 들뜬 만족감을 가져다주지만, 후자는 아무것도 바랄 것 없이 지금의 모습 그대로 평화롭고 고요하다. 수많은 성인들이 마음을 비우라고 했던 이유는 바로 마음을 비웠을 때 얻어지는 행복이 지고지순(至高至純)한 행복이기 때문일 것이다. 해마다 실시되는 국제기구나 단체의 행복도 조사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덴마크는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자연환경이나 물가 등은 그다지 경쟁력을 갖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나라 국민들은 저마다 행복하다고 느낀다. 그것은 남과 비교하지 않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방글라데시는 세계 최빈국인데도 국민행복지수는 세계 최상위권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면서도 행복지수는 조사대
인간 세상은 악이 승리하고 선이 패배하는 것 같지만, 거시적으로 보고 장기적으로 보면 반드시 진리와 정의가 승리하게 돼 있다. 그래서 사필귀정이라고 했다. 인간의 삶을 순간만 보고 겉모습만 보면 천태만상이지만, 길게 보고 속까지 보면 결과는 반드시 착한 사람이 이기게 되어 있다. 그래서 선승악패(善勝惡敗)라고 했다. 따라서 잘살고, 올곧게 살고, 착하게 살기 위한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인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사랑을 자신의 것으로 가꾸자. 참다운 나로 살아가자.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열심히 노력하자. 가식은 벗어던지고 눈치를 보지 말며 나의 길을 가면 되는 것이다. 자신의 고유한 삶을 살아가자. 삶을 배우기 위해 고생과 슬픔이 필요할 수도 있다. 삶을 배우기 위해 고통이 필요할 수도 있다. 삶을 배우기 위해 좌절이 필요할 수도 있다. 슬픔도 인생의 일부이고 고통도 인생의 일부이며 좌절도 인생의 일부이다. 슬픔을 가슴에 안아 보고 나서 버리자. 고통도 가슴에 안아 보고 버리자. 좌절도 가슴에 안아 보고 버리자. 자신을 슬픔으로, 고통으로 그리고 좌절로 구속하지 말자. 슬픔이나 고통이나 좌절을 마음속에 담아 두지 말자. 기쁨을 빼앗아 가는 것이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말의 중요성과 의미를 함축하는 것으로 이만하게 다가오는 것이 또 있을까. 여기에서 언급할 ‘말을 잘한다.’는 의미는 단순하게 판단할 수는 없다. 귀를 홀리게, 번지르르하게 달콤한 ‘말을 잘하는 것’과 분명한 내 의사 전달과 서로 간의 좋은 소통의 의미로 ‘잘하는 말’은 구분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이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가름한다는 말이 나올 만큼 다수의 사람과 또한 다양한 매체와 소통을 하는 세상이다. 말은 적당한 단어의 나열과 배열, 적절한 자리가 곧 좋은 말의 기본이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부터 조금은 첨예한, 말을 잘한다는 의미가 자리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말은 곧 그 사람이 입은 옷이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많은 이들이 때와 장소, 만나는 사람에 따라 입는 옷에 신경을 쓰듯, 대화를 통해서 상대방의 인격과 사고(思考)의 깊이를 가늠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의 말은 마음의 옷이라고 할 수 있다. 사용하는 단어와 어투, 전달하는 방식은 그 사람의 인격이나 품위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말 한마디의 위대함과 말 한마디의 무서움은 따로 예를 들지 않아도 살면서 누누이 경험하는 일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과 그를 바탕으로 한 인격을 바로세우는 일을 덕이라고 하고 이런 것들을 모아서 정리된 사고의 일갈(一喝)을 소신이라고 한다. 보신이 자신을 지키는 일이라면 소신은 자신을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보신은 자신의 안위를 도모하지만, 소신은 수많은 사람의 안위를 도모한다. 보신은 일시적 성공으로 보일 수 있으나 소신은 영구적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신이 있는 사람은 상황의 유·불리에 연연하지 않으며, 쓴 소리를 반기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온전히 내놓고 멀리 보고 살핌으로서 사안의 경중과 완급을 알고 생각이 정리되면 다소의 무리가 따른다 할지라도 의연히 대처해 나간다. 그것이 자신의 말로가 좋지 않을 지라도 말이다. 세상이 많이 혼탁해졌다. 사방을 둘러봐도 만용을 부리는 사람은 있을지 모르나 진정 용기 있는 사람은 만나기 어렵고, 지식도 있다하나 양심에 따라 지식을 실천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본인에게는 소신인 것이 간혹은 타인에게 아집이나 융통성 없는 것으로 곡해돼서 인간관계나 거래에 악영향을 끼칠 때도 있다. 나 또한 꽤 소신 있게 살아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맘고생을 여러 번 하다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