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복형제 하나 없이 고독을 벗 삼아 살아오다 보니 자식을 다섯 명 낳고 싶었지만, 경제적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 남매 밖에 못 낳았다.
아들딸을 낳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딸이 3년 전 혼인하여 건강하고 귀여운 아들을 낳았고, 둘째인 아들을 지난 5일 결혼시켰다.
혼사를 알리는 범위에 대해 고민했다. 왜냐하면 나는 몇 년 전 일간지에 경조사 문화 개선하자는 제목의 다음과 같은 글을 썼기 때문이다.
광복 이전까지는 경조사 때 이웃과 친지 등이 한 자리에 모여 슬픔과 기쁨을 함께하고 부조는 받지 않았으며, 노동력의 품앗이와 상조회를 통한 경제적 지원이 보편화돼 있었다. 광복 후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편의주의와 배금주의가 만연하고 유난히 과시욕이 강한 국민성 때문에 경조사 때 조․하객의 수나 축․부의금의 액수가 자기과시의 한 방법이 됐다.
그러다 보니 방계혈족의 경조사를 알리고 이해관계가 있는 거래처에까지 알리는 등 경조사 문화는 돈봉투 문화로 전락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돈봉투 문화가 된 경조사 문화는 개선해야 된다. 문명국에서는 상가의 부조금은 빈민구호금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상가에 돈봉투를 내는 것은 일종의 모욕이다. 결혼식도 가까운 친․인척과 친한 친지․친구 등 예식에 참석해 축하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인원만 초대하고 축의금은 받지 않는다.
주는 것은 부자정신이요, 받는 것은 거지정신이다. 부자정신이 없다면 우리가 잘살 수도 없지 않을까.
이 글의 내용은 나의 평소 생각인 것이다. 그래서 알리는 범위를 친․인척 및 외척은 6촌까지(나와 연령차가 심한 경우는 제외), 친구와 지인은 친목 계원과 내가 부조를 했던 경우, 직장은 굿모닝시스템에 게시, 교회는 성도가 구두 및 서면 공지했다.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고지서는 안 내고 최소한으로 알린 것이다.
하지만 미안할 정도로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축하를 해주셨고 참석하지 못한 분들은 축의금을 보내주셨다.
아들딸의 결혼식을 모두 마치고 나니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좌석이 부족하여 많은 분들이 서서 예식 진행 상황을 보며 축하해 주신 점은 아쉽고 매우 송구스러웠다.
아들딸의 혼사를 마치고 평생 두 번 받아본 부조의 내역을 살펴보았다. 나는 놀랐다. 그동안 내가 부조를 한 명단에 없는 분들이 너무나 많이 축의금을 보내왔고 딸의 혼사 때 축의금을 보내지 못했던 어떤 분은 내가 생각한 금액의 3배나 되는 축의금을 아들의 혼사 때 보내왔기 때문이다. 세태가 갈수록 각박해지는 세상에서 이럴 수가 있는가 하고 놀람과 기쁨이 교차했다.
그리고 부조의 내역을 구체적으로 분석해 보았다. 그동안 내가 부조한 분들 대부분이 부조해 주셨다. 하지만 몇 십 명은 내가 부조를 했는데도 딸의 결혼 때도 부조를 하지 않았고 아들의 결혼 때도 부조를 하지 않았다. 부조한 분 중 대부분 내가 부조한 만큼 부조했지만, 10만원 부조했는데 5만원 부조한 분, 5만원 부조했는데 3만원 부조한 분, 결혼 때 신랑과 신부 양측에 부조했으나 양측 모두 부조를 안한 분, 자식 결혼에 부조했는데 부조를 안한 분, 처가의 조사에 부조했는데 부조를 안한 분, 두 자식의 혼인에 부조했는데 부조를 안한 분, 부모상에 부조했는데 부조를 안한 분, 동생결혼에 부조했는데 부조를 안한 분, 부모상과 동생상 등 3회 부조했는데 부조를 안한 분, 본인결혼에 부조했는데 부조를 안한 분, 경사 때마다 참석은 하면서도 부조는 안하는 분, 기타 경조사에 부조했으나 부조를 안한 분 등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분들도 상당수 있었다. 그런 반면 내가 3만원 부조했는데 5만원을․5만원 부조했는데 10만원을 부조하여 나를 미안하게 한 분들도 많았다.
부조한 분 중 나를 안타깝게 한 분들도 있었다. 왜냐하면 주소나 소속, 성명 중 아무 것도 기재되지 않은 부조봉투가 있는가하면 신랑 측에 내야할 봉투를 신부 측에 낸 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차제에 많은 분들에게 당부 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부조봉투에 성명은 반드시 기재해야 되고 동명이인(同名異人)이 있을 수 있으니 주소나 소속도 기재해야 한다. 또 하나, 성명은 반드시 한글로 기재하는 것이 좋다. 한자교육의 부실과 한자를 별로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대학 아니라 대학원을 나와도 대부분 한자를 많이 모른다. 따라서 방명록에 성명을 잘못 기재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부조란 도울 부(扶)자에 조울 조(助)자로 경조사에 경제적으로 돕는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3만원이나 5만원 부조하면서 아내와 자식 등 두세 명 혹은 네 명이나 함께 참석하여 식사를 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부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손해를 보이는 것이다. 부조할 만한 형편이 되지 못하지만 꼭 참석하여 축하를 해주고 싶다면 혼자서 빈손으로 참석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엊그제 태어난 것 같은 데 벌써 두 자식을 결혼을 시켜 부모의 품에서 모두 떠나보내고 나니 참으로 감회가 새롭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양심의 자유를 주셨으니,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이 양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통감했다. 부조해주신 분들께 잊지 못할 고마움을 느꼈고, 순자의 성악설이 하루빨리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김병연 시인/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