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택 모
김천소방서 방호구조과장
지난해 10월 발생했던 부산 해운대 38층짜리 주상복합 건물의 화재는 국민 모두에게 충격과 불안감을 주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단순한 불안감이 그 도를 넘어서 고층이라는 공간 자체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 과거와는 다른, 고층빌딩과 초고층빌딩의 숲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이번 화재는 보다 전문적으로, 그리고 객관적으로 해석돼 그 대책 수립과 함께 한국의 공간 경쟁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인터넷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각종 사고 현장의 이미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번 고층 주상복합 건물 화재는 4층의 사각지역에서 발생해 건물의 외벽을 태우면서 ‘V’자를 그리며 최상층까지 확대됐다. 법규상 자동소화설비가 면제된 공간에서 화재가 발생, 산불처럼 외벽이 타들어갔으며 마침내 커질 대로 커져서 꼭대기층까지 태웠다. 화재공학의 기본 가정은 건물 내부 1개 지점에서 화재가 발생해 내부 거주자에게 위험을 유발하는 형태로 확산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시나리오는 전문가들조차 예측하지 못했고 매우 희귀한, 그러나 눈앞에서 벌어진 실제 화재였다.
그러나 세계 어느 나라도 이러한 문제에 대해 절박하게 대처하고 있지는 못하다. 그 이유는 외벽이 불 타는 게 충격적인 사건이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인명 피해는 경미했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외벽 보온재나 복합패널심재(샌드위치형 패널 내부 재료)의 연소성을 규제하려는 전문가들의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만시지탄이지만 지금부터라도 사각지역에 자동소화장치를 추가 설치하고, 화재감지나 영상관제가 가능한 여건을 만들며, 세대 내부에서 계단을 거치지 않더라도 아래쪽 발코니로 통할 수 있는 내림식 사다리를 설치하는 등 기존 기술을 좀더 잘 응용한다면 이 같은 화재 발생을 조기에 막거나 인명 피해를 보다 더 확실하게 경감할 수 있을 것이다.
화재 발생 자체를 완전히 없애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그러나 인류의 지혜와 노력은 역사가 입증하듯이 불을 다스리면서 발전에 기여해 온 게 사실이다. 이제 국내 도시 공간도 선진국을 벤치마킹하는 것만으로는 안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첨단 수준에 이미 이르렀다. 문제는 어떻게든 도시 공간이 범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합리적 수준의 해결책을 도출하고 국민적 합의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불안감을 자극하거나 과도한 1차원적 규제로 스스로를 속박하는 것은 과거의 사례에서 종종 그러했듯이 오히려 화재의 실질 피해보다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영원히 걸머지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형 사고일수록 그 극복 과정은 더욱 더 침착함과 여유를 필요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