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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남영동 1985 실제 모델 '고문기술자' 이근안 88세로 사망(종합)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 인사들에 대한 경찰 고문수사 주도


(서울=연합뉴스)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 인사들에 대한 수사를 주도하며 경찰의 '고문 기술자'로 이름을 떨친 이근안(88) 전 경감이 25일 숨졌다.

26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고인은 최근 건강이 악화해 서울의 한 요양병원에서 지내다 전날 숙환으로 사망했다.

고인은 1970∼80년대 치안본부 대공수사관으로 근무하며 각종 공안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고문 등을 주도한 인물이다. 1979년 남민전 준비위 사건, 1981년 '서울대 무림사건' 등을 처리한 일로 내무부 표창을 받았다. 1985년에는 김근태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의장을 고문했다.

민주화 이후 자신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하자 11년간 도피 생활을 이어가다 1999년 자수했다. 이후 납북어부 김성학씨를 불법 감금·고문한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7년의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했다.

출소 이후에는 목사로 활동하며 신앙 간증 등의 활동을 해왔지만 "나는 고문 기술자가 아닌 애국자"라고 표현하며 자신의 과오를 정당화하는 모습을 보여 논란을 빚었다.

2011년 12월 서울에서 열린 자서전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고백' 출판기념회에서 "당시 간첩과 사상범을 잡는 것은 애국이었다"며 "애국이 아니면 누가 목숨을 내놓고 일했겠느냐"고 주장해 공분을 샀다.

그는 '남영동 1985' 등 군사정권 시기를 다룬 영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고문 수사관 역할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고인의 장례식장은 서울 동대문구 모 병원에 차려졌다. 발인은 27일 오전 5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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