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임진년이 이제 역사 속으로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찜통처럼 무더웠던 여름이나 칼날 같이 매서웠던 겨울은 그때만 지나면 쉽게 잊어버릴 수 있겠지만, 전라남도 나주의 초등학생 성폭행 사건은 가슴아파하고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 부모야 어찌 범인을 용서할 수 있을까. 살다보면 한 맺힌 일들이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억지로 용서하는 경우가 더러는 있지만 이번 사건과 같은 아픈 상처는 치유가 될 수가 없으므로 세월이 흘러도 영원히 지울 수가 없을 것이다. 임진년 한 해가 마무리되니 만감이 교차한다.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어가니 마음은 바쁘고 인생 2막을 열어야 할 때는 가까워지는데 뜻대로 되는 것은 없고 주름살 하나씩 더 늘어가니 허무가 감돌고 새삼 삶이 무상해짐을 느낀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사람들이 무심코 던진 돌에 맞은 개구리가 사경을 헤매는 것처럼 본의 아니게 내뱉은 말이나 무심코 한 행동에 남들이 상처를 받지는 안았는지 한 번쯤 생각해보고 희망찬 내일을 열자. 세월이 흐를수록 늙어가는 사람이 아니라 익어가는 사람이 되라는 가르침처럼 긍정적이고 생동감 있는 삶과 후회 없는 삶을 살자. 인간은 늘 아쉬워하고 후회하며 산다
현대적 개념의 심폐소생술이 처음으로 도입되었을 때에는 심폐소생술이란 “심정지 환자를 소생시키기 위하여 환자의 흉부를 압박하고 인공호흡을 시행하는 치료기술”로 정의 되었으나 점차 심정지환자의 치료방법이 발달하면서 심폐소생술은 단순히 흉부 압박과 인공호흡만을 의미하는 용어가 아니라, 심정지 환자를 소생시키기 위한 모든 치료방법을 의미이다. 심폐정지로 의해 심장이 멎게 되면 당연히 우리 몸으로 가는 혈액의 공급이 중단되고, 결과적으로 온몸이 세포가 손상을 받게 되고 점차 죽어가게 된다. 그 중에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뇌와 심장이다. 특히 뇌는 아주 짧은 시간동안 혈액공급(산소+영양분)이 되지 않으면 손상받기 시작한다. 보통 4~5분 정도 지나면 손상을 받기 시작하고 10여분이 경과하게 되면 비가역적인 손상을 받게 된다. 다시 말해서 '뇌사(Brain death)'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심폐소생술은 얼마나 중요한지 말하지 안 해도 될 것으로 생각한다. 심폐소생술의 주된 목적은 우리 몸에 가장 기본이 되는 장기인 심장, 뇌, 그리고 그 외의 장기에 산소를 공급하자는데 있다. 심폐소생술이란 갑작스런 심장마비이거나 사고로 인해 폐와 심장의 활동이 멈추게 되는 때에 필
요즘은 젊은 여성들의 의상은 이른바 ‘하의 실종’이 대세다. 하의가 짧아서 마치 실종된 듯 보인다는 뜻인 패션 트렌드는 수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하의가 짧아진 원인은 연예인의 역할이 가장 컸다고 보여 진다. 유명 연예인이 선도했다는 것이다. 시원하기 때문이라는 계절적 요인을 지적하는 이도 있지만 이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아무도 자신을 봐주지 않는 상황이 두렵기에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타인의 주목을 끌기 위하여 하의 실종 패션이 유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목 사회에서 하의 실종은 유혹이 아니라 단지 주목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지나친 노출인 하의 실종은 상대방이 시선을 어디에 둬야 좋을지 몰라 안절부절못한다. 벗으면 벗을수록 아름다운 것이 여성이라지만, 때와 장소를 가려서 벗을 때 아름다운 것이다. 세상에는 섹시미도 있고 지성미도 있다. 섹시미보다는 지성미가 훨씬 아름답다. 텔레비전 화면에서 지나친 노출로 섹시미를 자랑하는 여성 앵커보다는 적당한 노출로 지성미를 자랑하는 여성 앵커가 얼마나 더 아름다운지는 새삼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요즘은 젊은 여성들이 하의 실종 옷도 입고, 현기증이 일어나는 짧은 치마도 입고, 배꼽을 내놓은 옷차
부모의 사랑으로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서 성인이 되어 직장생활을 하고 때가 되면 혼인하여 달콤한 신혼생활을 하고 얼마 후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열심히 기르고 언젠가는 은퇴하여 인생의 황혼기를 맞으며 천명을 받아 생을 마감하는 것을 아마도 인간의 보편적 삶이라고 할 것이다. 물론 각종 사고와 질병으로 일찍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부모를 잘 만나 부족함 없이 살고 자신의 꿈을 이루며, 속 썩이는 배우자나 자식이 없고, 건강하게 장수하고, 즐겁게 살다가 고통 없이 편안히 죽는 다면 이는 누구나 바라는 꿈같은 삶이다. 어디 그런 꿈같은 삶이 쉽게 찾아올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아마도 상당수는 정반대의 삶을 사는지도 모른다. 태어날 때부터 심장질환이나 소아마비 등으로 고통 받는 아이, 부모의 요절로 어쩔 수 없이 소년ㆍ소년가장이 된 아이,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사고나 질병으로 죽는 아이 등 고난의 모습은 실로 다양하다. 그러면 편안히 잘사는 자들과 고난의 삶을 사는 자들의 현격한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과연 국가가 이를 해결해 줄 수 있을까. 부모나 환경을 원망해야 하는가. 아니면 현재의 충분치 않은 사회안전망에 의존해야 하는가.
직선은 두 개의 점을 잇는 가장 짧은 하나의 선이다. 우리는 직선에 친숙하다. 건물은 직선의 조합으로 반듯하고 높게 올라간다. 길도 직선으로 뻗고 가로등도 직선이다. 건물에 들어서면 4각의 대리석을 밟고 4각의 기둥과 벽을 대하게 된다. 내비게이션에 출발지와 목적지를 입력하면 가장 짧은 길을 안내한다. 직선적 환경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낮에는 사냥하고 밤에는 쉬던 시대의 시간은 낮과 밤으로 구별되어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욕구의 증가는 시간을 톱니바퀴로 표시하는 직선의 시간으로 바꾸어 놓았다. 시간은 한번 가면 돌아오지 않게 되었다. 결국 단위시간에 누가 더 많은 것을 갖는가를 계량하게 되고, 크고 작음의 비교는 한없는 욕망을 만들어나갔다. 결국 기준이 되는 직선의 수가 점점 늘어나서 수많은 직선의 감옥에 갇혀 살고 있는 것이다. 물은 언제나 낮은 곳을 찾아 직선으로 움직인다. 폭포가 그렇고 유리창의 빗물은 직선을 그린다. 하지만 강은 굽이굽이 돌아 흐른다. 높은 산정에 올라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며 내려다보면, 멀리 구불구불 은빛으로 반짝이며 흐르는 강을 보게 된다. 평탄한 평야에서도, 산과 산 사이에서도 구불구불 흐르는 강은 평화를 느
너와 내가 모여 우리가 되지만 내가 빠지면 너희들이 된다. 우리는 우리 가족, 우리 동네, 우리 고장, 우리나라로 확대된다. 지역이 넓어지고 사람이 많아지면 마음도 같이 넓어져야 하는데 마음은 오히려 좁아진다. 좁은 우리들과 너희들은 물과 기름이 된다. 오직 나만 생각하여 내 탓은 없고 남의 탓만 있다. 물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른다. 산에서 골짜기로, 시내로, 강으로, 바다로 흘러간다. 흘러가는 도중에 장애물을 만나면 파괴하기보다는 넘어가고 넘을 수 없으면 부드럽게 돌아가 종래에는 가장 낮은 곳에 가장 많이 모인다. 물은 그 아래를 들여다보면 낮은 데도 있고 깊은 데도 있고 온갖 것들이 그 아래서 또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으나 수면은 언제나 수평을 이룬다. 물이 한꺼번에 많아져 급류를 이루면 수면이 높고 거칠어지는 것이 마치 인간 속의 뭔가가 넘쳐 화를 참지 못하고 밖으로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하고 상대방이 높이 보여 자신만 낮다고 생각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폭력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것과 유사하다. 그릇은 작은데 물이 너무 많아 흘러넘쳐 주위를 휩쓸어 버리는 것은 좁은 마음에 상대를 이해하고 포용하기보다는 해코지를 하려거나 내치려는 마음이 생기는 것과
도시생활에 못지않게 농촌에서도 비닐ㆍ스티로폼 등 농산폐기물 등 많은 생활쓰레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른 아침이나 어두워질 무렵에 농촌지역을 지니다 보면 불법소각이 이루어지는 걸 종종 보게 된다. 연기가 나는 것만 보곤 화재로 오인해 신고하는 것이 다반사다. 때로는 거세진 불꽃이 산불로 이어져 수십년 가꿔온 산림을 잿더미로 만들기도 한다. 또 무단으로 쓰레기를 소각하는 사람의 대부분이 노인들이라 과태료 부과 등의 강력한 규제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소방관서는 겨울철 화재 피해를 줄이기 위해 많은 인력과 시간을 투자해, 화재예방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특히 산불의 주범인 농촌 생활형 잡불에 대한 위험을 강조하고 있다. 산불의 경의 재산 피해, 자연 피해도 매우 크지만, 환경오염 측면에서도 상당한 피해를 주고 있다. 하지만 이런 화재예방 계도 활동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분은 소방관서와 국민의 의식의 차이이다. 물론 ‘그것 좀 태운 것이 뭐 대수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냥 쓰레기를 태웠을 때, 소각시설에서 태울 때보다 수십배 이상의 다이옥신, 일산화탄소 등 오염물질이 배출된다. 이렇듯, 잘못된 소각행위는 재산, 자연피해와 더불어 환경오염 또한 심각하
학교폭력이 빈발하여 각종 대책이 시행되고 있으나 학생의 인권 강화와 함께 체벌이 금지되면서 학생들이 교사를 성희롱하고 폭행하는 경우까지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교폭력 예방이 제대로 이루어질지는 의문이다. 심지어 학부모들이 학교에 가서 교사에게 폭언을 하거나 구타하는 사례도 있다. 경기도의 어느 고등학교에서는 만취한 고등학생들이 난동을 부려도 속수무책이었다. 이와 같은 결과가 초래되고 있는 배경으로 여러 가지 이유를 찾아볼 수 있으나 무엇보다도 교사에 대한 존경심이 약화된 것을 들 수 있다. 간단한 체벌이나 훈계에도 학생들의 반발이 심하고 오히려 교사를 조롱하는 태도를 보여도 마땅한 제재 수단이 없다. 일부 교사들이 자제력이나 판단력 부족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학생과 학부모의 책임이 더 크다. 학생의 권리만 강조한 결과, 교사들의 통제력이 약화된 것을 학생들이 간파하여 지시를 무시하기 때문이다. 학부모도 자녀를 과보호하고 자기 자녀의 장래에만 관심을 집중하여 교사에게 지나친 기대를 하다가 실망하게 되면 쉽게 비난한다. 새벽부터 밤까지 공부하는 자녀도 측은하겠지만 그들을 지도하는 교사도 마찬가지 처지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
인간은 누구나 어디서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고, 가정이나 사회에서 대등한 자격으로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생존적인 기본권이다. 그러나 각양각색의 사람이 모여서 집단적 생활을 하는 공동사회에서는 그 사회의 유지를 위해서 다양한 개인의 자유를 억제하거나 제한해서 사회전체를 유지시키는 질서가 필요하다. 이것이 인간의 공동생활에 꼭 필요한 도덕적 규범인 사회윤리가 아닌가 생각한다. 사회윤리는 사회구성원인 개개인의 특정적인 감정이나 행동의 제한적 작용이 요구되고 특정 사회질서유지에 필요한 사회풍토 안에서 생활하면서 그 사회풍토가 일반적으로 장기간 지속되는 경향 속에서 자연적으로 특정한 형식 즉 문화가 이루어진다. 이것이 자율적인 사회 규범이든 종교 규범이든 윤리도덕, 관습, 풍습이든 지속적인 교육을 통하던지 제재를 통해 현재로서 그 사회에 필요한 질서유지를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특히 정신적으로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서는 범죄, 비행, 빈곤과 반사회, 사회부적응과 일탈 등 사회병리현상도 분야별로 조사 분석하여 대응방안을 강구하는 것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한국의 사회질서 현실을 되돌아보자. 어디를 가든 통행에 불편을 주는 불법 주정차. 횡단보도까지도
예전엔 대학 졸업 시즌이 되면 꼭 보도되는 기사가 있었다. 대학 수석 졸업자와 수석 졸업자가 받은 졸업 학점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수석 졸업자가 받은 대단한 대학 졸업 학점에 경이를 표하곤 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이러한 기사를 만나기도 힘들뿐만 아니라 보도되더라도 특별한 이야기 거리가 되지 못한다. 전 학년 A⁺를 받은 학생을 만나는 것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보도에 따르면 60%가 넘는 학생들이 A학점을 받은 대학도 있다. 좀 과장하면 셋 중 둘은 A학점을 받은 것이다. 이런 지경이면 A학점을 받지 못한 학생이 오히려 이상하다. 이러니 수석 졸업자의 성적이 무슨 뉴스거리가 되겠는가. 필자는 학점이 부풀려진 원인으로 대학의 양적 팽창과 그릇된 제자 사랑을 지적하고 싶다. 현재 대학 진학자는 고등학교 졸업자의 80%(한때는 84%) 정도이고 원하는 일자리는 이에 크게 못 미치는 상황이다. 1980년대를 지나면서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속도는 그 전에 비해 둔화되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 대학은 엄청난 양적 성장을 했다. 이제는 국내에서 신입생을 수급하기 힘들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구조적으로 구직자가 일자리보다 크게 많아졌다. 이런 취업 환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