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란·이스라엘·미국 정상과 연쇄 통화를 하며 '평화 중재자'로 나선 것은 중동 동맹인 시리아에 이어 이란에서마저 친러시아 정권이 붕괴하는 것을 방지하려는 의도라고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16일(현지시간) 분석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시설을 공습한 13일 당일에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잇달아 통화하면서 양국간 중재와 갈등 완화를 주선할 뜻을 내비쳤다.
그 다음날 푸틴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도 재차 중재 역할을 자처했으며, 미국과 이란 간 핵협상과 관련해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WP에 따르면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을 13일 새벽에 폭격하기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러시아 엘리트 중 일부는 이번 충돌이 자국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중동 사태로 미국 등 서방 측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쏟는 관심이 줄어들고 유가가 오르면서 러시아의 재정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공격 범위를 확대해 이란의 곳곳의 에너지 시설과 생산 시설을 계속 폭격함에 따라 이란에서 정권교체가 일어나고 그에 따라 러시아가 형성하려고 노력해온 '반서방 동맹'에서 가장 중요한 동맹국을 잃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콘스탄틴 자툴린 독립국가연합(CIS)연구소 소장은 "상황이 러시아에 위험한 방향으로 전개중"이라고 텔레그램 게시물로 썼다.
러시아 정보기관들과 가까운 이 연구소는 18일 이란 외무부와 공동으로 '변화하는 세계에서의 러시아-이란 협력'이라는 제목으로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러시아 고위 외교관들과 가까운 한 러시아 학자는 WP에 "이스라엘의 압박이 정권의 약화로 이어질지는 확실하지 않다. 외부의 위협이 오히려 그 반대의 결과를 가져와 사회를 단결시킬 수도 있다"며 "이 안정의 한계가 어디인지, 이것이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침공을 본격적으로 개시한 후 러시아는 오랜 우호국인 이란과 더욱 가까워지면서 값싼 드론과 미사일을 꾸준히 공급받아왔다.
러시아와 이란은 1월에 긴밀한 관계를 공식화하는 전략적 파트너십 협정을 체결했지만 군사 동맹 체결까지는 가지 않았다.
이 학자는 "가장 큰 위협은 위기가 해결되더라도 역내에서 러시아의 입지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네타냐후가 (이란) 이슬람 공화국을 압박하고 정권 교체를 도발할 수 있다면, 새 정권은 세속적이든 종교적이든, 군부정권이든 진보적이든 보수적이든 무엇이든지 현재 정권만큼 모스크바에 긍정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학자는 설령 현 이란 정권이 장기적인 공격을 견뎌내더라도 중동에서 핵 확산 과정이 확산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러시아의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러시아가 유리해지는 상황을 찾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시리아에서 친러 아사드 정권이 붕괴한 데 이어 현 이란 정권까지 붕괴한다면 러시아에 더욱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이 학자는 지적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이란 정권교체를 강력히 추진함에 따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중재자 노릇을 할 수 있을 가능성은 더욱 낮아지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일부 러시아 인사들은 이번 이스라엘-이라크 충돌이 세계적으로 더 큰 충돌로 이어지고 제3차 세계대전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크렘린궁과 연결고리가 있는 정치분석가 세르게이 마르코프는 16일 WP에 "모든 곳에서 분쟁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다면, 이러한 불길이 합쳐져 전 세계적으로 거대한 불길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