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담에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어린아이 말도 귀담아들어라.”는 말이 있다. 이런 속담은 모두 말의 중요성을 의미한다. 말을 할 때도 신중히 해야 하지만, 마음에 와 닿은 말 한마디를 깊이 새겨들으면 자신이 감동하고 인생도 변하게 된다. 말 한마디를 듣고 인생이 달라진 유명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인류의 스승 슈바이처 이야기다. 그가 1학년 때 또래들과 학교에서 돌아오다가 원 안에서 밖으로 밀어내기 놀이를 했다. 이렇게 놀이를 하던 도중 슈바이처가 동네 아이와 싸움이 붙었다. 슈바이처가 상대 아이를 쓰러뜨리고 주먹으로 내려치려는 순간, 밑에 깔려있던 아이가 “나도 너처럼 고깃국만 먹을 수 있었다면 절대로 너한테 지지 않을 거야”라고 했다. 이 말 한마디는 슈바이처의 영혼을 울렸고, 그의 일생을 굶주림과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돌보는 데 힘을 쏟게 했다. 슈바이처(1875~1965)는 독일계의 프랑스인으로 의사이자 사상가로 목사와 대학 강사를 지냈으며 세계의 위인, 원시림의 성자 등으로 불리며 존경받는 인물이다. 가난하고 미개한 아프리카의 흑인들이 의사가 없어 질병으로 고통을 당
진심을 담아냈던 추억이 너에겐 그냥 낡은 기억이 되는 걸 보면, 난 네게 힘겨운 존재였을 수도. 그래도 낡은 기억에서 가끔은 꺼내어지길 원하는 내 이기적인 진심은 회의의 미소가 조금이라도 생겼으면 하는 기억이길 원해. 김별 | 글 쓰는 연주자
모두가 가족의 얘기엔 어려운 진심의 감정들을 숨기고 있다. 내게 가족 얘기는 이제 꺼내기 힘든 얘기가 되었다. 용기가 안나 서일 수도 있다. 아니, 난 두려워서다. 회피하는 거다. 슬픔에 이길 자신이 없어서. 엄마가 가신지 벌써 7년이 되어 간다. 그렇게 건강하시던 아빠는 엄마가 가신지 1년여 만에 외로움과 자책감과 그리움과 슬픔과 고독으로 인해 기억을 잃어가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으셨다. 이 계기로 독립해 10년을 넘게 살던 난, 동생이랑 같이 아빠를 보살펴드리기 위해 1년 반전에 합가해 이사했다. 벌써 2년이 되어 간다. 하루하루 변해가는 아빠의 모습에 가여워 보이기도 하다가 도, 또, 자식이라 어쩔 수 없이 나오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원초적인 감정으로 인정할 수 없는 이 상황에 문득문득 분노를 내비치고, 돌아서면 다시 후회하고, 반복 반복... 아빠를 환자로 보아야 하는데, 아빠로 보니 모든 무수한 나쁜 감정들이 각기 다른 말들로 전해진다. 합가 후 바로 코로나가 덮쳤다. 너무 재앙처럼 다가 온 팬데믹 상황은 나를 좌절시켰다. 결국 절망과 우울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두운 마음을 가지고 쓰기 시작한 글은, 어느
너에게 내 모든 감정을 쏟아냈던 건, 숨을 쉴 수 없기에 내가 살기 위함이었어. 숨을 하나하나 내뱉듯, 내 진심의 감정이 너에게 닿아 내 숨이 붙어 있는 걸 상상해 김별 | 글 쓰는 연주자
보이려고 보인 게 아니었다. 보이려고 애쓴 거였다. 나의 얼굴과, 나의 말들과, 나의 마음과, 나의 미소가 너에게 다가가 한순간만이라도 내 마음이 진심이라고 너에게 전해 주고 싶었다. 그냥 지나치다가도 우두커니 서서 황홀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꽃들의 존재처럼. 김별 | 글 쓰는 연주자
돌아볼 길 없는 사랑. 돌아봐서도 안 되는 사랑. 인연이 아니었다고 굳이 단정 지어야 하는 사랑에 내 모든 감정을 슬픈 눈물로 호소했던 그 밤들을 너무도 아프게 기억한다. 김별 | 글 쓰는 연주자
여름이 시작되는 건, 너와 나의 추억이 또다시 시작되는 것이고, 여름이 끝났다는 건, 너와 나의 추억이 그저 그런 기억으로 사라져 끝났다는 것이니, 난 또다시 시작되는 이 여름에 더 이상 두근거릴 수 없는 가여운 진심의 어딘가에서 서성이고 있다. 김별 | 글 쓰는 연주자
내게 긴 수십 년을 산 고향 같은 곳이 있다. 아직도 그곳은 나에게 아픈 곳이기도 하지만, 가장 그립고 행복했던 기억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엄마랑 평생 함께한 곳. 초중고,대학교,유학후까지. 7년 전에 이곳을 떠나 멀리 이사했다. 엄마가 가시고 석 달 후에 이곳을 떠났다. 원랜, 떠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빠가 원해서 떠나게 됐던 거였다. 아빠도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살아온 이곳이 엄마와 함께 보낸 좋은 세월의 기억으로 추억하고 살고 싶었지만, 그 기억이 그리움의 고통으로 다가와 견딜 수가 없다고 했다. 그렇게 우린, 그곳에 엄마를 가슴에 묻고 떠났다. 김별 | 글 쓰는 연주자
난 네가 내 외로움과 고통과 슬픔을 알지 않길 바랬어. 내 감정이 너한테 전해지면 너의 그 슬픈 눈빛을 바라보는 게 두려워서. 난 네게 언제까지나 찬란한 햇살에 부서지는 반짝이는 바다가 되고 싶거든. 김별 | 글 쓰는 연주자
넌 별이었더라. 스스로 빛을 내더니 나에게 그 빛을 내어 주고 나의 마음마저 무수히 많은 빛으로 번지게 해 놓고 결국, 아주 오래전에 어떤 별에서 떠난 빛이었던 것처럼 나에게서도 언젠가 그 빛을 발하고 떠나더라. 김별 | 글 쓰는 연주자